참호전 : 여성과 아동

 제 1차 세계 대전은 과거의 전쟁들보다 훨씬 더 많은 규모의 산업 기반이 동원된 전쟁이었다. 전선에서는 항상 많은 양의 총과 탄약, 그리고 병사들이 먹을 음식 등 각종 군수물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산업 규모가 더욱 팽창하게 되자 각 공장들은 수요에 맞춰 물자를 생산, 공급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모집했다. 그럼에도 공장의 인력은 매우 부족했다. 많은 수의 노동자가 전쟁 발발과 함께 전선으로 이동하면서 생긴 큰 공백 때문이었다.

 

 이러한 공백을 채웠던 것은 당시 많은 수의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각종 공장, 광산, 실험실 근로자, 버스 운전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였으며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에 기여하였다. 물론 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 포탄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

 

< 제조를 끝낸 탄약들을 운반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

 

< 포도당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

 

< 타이어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

 

< 석탄 광산에서의 여성 노동자들 >

 

< 석면 메트리스를 만들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

 

< 중탄산나트륨을 제조하는 회사 내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 >

 

 제대로 된 안전장치조차 없는 환경 속에서 일은 고되고 위험하였다. 실험실에서 실험 도중 화학물질로 인해 시력을 상실하기도 했으며 공장 내에 날리는 각종 가루와 먼지는 기관지 손상으로 이어졌다. 정기적으로 폭발성 물질과 접촉했던 이들은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증상을 겪기도 했다. 폭발 사고라도 일어나면 곧 대형 피해로 이어졌다. 특히 탄약 공장의 경우 많은 양의 화약들과 제조된 포탄들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욱 컸다.

 

< 폭발 사고로 파괴된 공장의 모습 >

 

< 또 다른 폭발 사고 현장의 모습 >

 

 그렇다고 노동 시간이 짧은 것도 아니었다. 생산의 압박과 계속되는 전방으로부터의 요구로 오랜 시간은 작업 현장에서 일해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간간히 짧은 휴식 시간만이 주어지긴 했지만 화장실에 가거나 샌드위치를 먹다보면 금방 지나가고 말았다.

 

 여성들은 후방의 공장이나 광산, 실험실에서 뿐만이 아니라 전방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적십자사와 함께 복무하며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 및 간호하였으며 또한 전문 사진작가로 활약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 전달하였다.

 

< 서부전선의 간호사 >

 

 여성뿐만이 아니라 어린이들도 전쟁에 있어 여러 가지 방면으로 기여하였다. 일부는 나이를 속이고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직접 전쟁에 참여하고자 시도하기도 하였는데 일부 성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신병 모집 담당자에 의해 제지되었다.

 

< 9살 아일랜드 소년이 입대를 원하며 쓴 편지 >

 

 위와 같은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보이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전쟁에 기여하였다. 영국 내에서 철도 교량과 트랙, 기차역, 저수지와 같은 중요시설을 보호하기도 했고 독일의 영국 공습이 시작된 후로는 공습 피난과 관련하여 이를 지원, 보조하기도 하였다. 일부 스카우트는 심지어 소방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 철도 교량을 지키고 있는 보이 스카우트의 모습 >

 

 하지만 가장 쉽게 전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기부 또는 모금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은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군인들을 위한, 또는 부상으로 장애를 가지게 된 전직 군인들을 위해 설립된 여러 자선 단체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 모금 활동을 벌였다.

 

< 전쟁 저축 협회에 기부를 하기 위해 줄을 선 아이들의 모습 >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산업 현장, 즉 공장에서 일하면서 전쟁에 기여한 경우도 있었다.

 

< 항공기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

 

 전쟁 기간 동안 여성과 아동의 이러한 기여는 이후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인정되어 큰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이는 여성 부분에서 돋보이는데 우선 1918년 2월 인민대표법을 통해 30세 이상의 여성들도 투표권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이후 10년 후에는 21세 이상의 여성들로 투표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참정권 운동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결실이 ‘공짜’로 주어졌던 것이 아니며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에 ‘기여’ 또는 ‘참여’함으로써 이루어낸 결과였다는 것이다.

 

참호전 : 여성과 아동

 제 1차 세계 대전은 과거의 전쟁들보다 훨씬 더 많은 규모의 산업 기반이 동원된 전쟁이었다. 전선에서는 항상 많은 양의 총과 탄약, 그리고 병사들이 먹을 음식 등 각종 군수물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산업 규모가 더욱 팽창하게 되자 각 공장들은 수요에 맞춰 물자를 생산, 공급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모집했다. 그럼에도 공장의 인력은 매우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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