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튼섬의 역사 4편. 스코틀랜드 독립전쟁
- 역사
- 2019. 10. 26. 10:42
시몽 드 몽포르를 중심으로 뭉친 귀족 세력들의 대규모 반란은 헨리3세의 국왕군을 상대로 승리한다.
이때 헨리3세와 함께
왕세자 '에드워드1세' 가 포로로 잡혀 탑에 갇히는데
시몽 드 몽포르가 의회를 소집하고 있는 틈을타
에드워드1세는 탈출하여
(현대의 글로스터 공작)
글로스터 공작의 도움으로 함께 국왕군을 결성하고 시몽 드 몽포르의 반란군과 격돌한다.
에드워드1세는 '이브샴 전투' 에서 시몽 드 몽포르의 반란군들을 상대로 승리하고
다시는 귀족들이 못깝치게 시몽 드 몽포르를 다섯 조각으로 토막낸다.
당당히 승리하고 돌아온 에드워드1세는 아버지를 다시 왕위에 올려놓지만
왕국의 실권은 왕세자 신분인 에드워드1세가 쥐어 잡고 있었다.
그후 에드워드1세는 8차 십자군전쟁에 참여하고
어쌔신에게 암살당할뻔 하는등의 고생을 겪다가
1272년 아버지가 병사하자 3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에드워드1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왕권을 강화하기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귀족들의 세력약화를 위해 토지분배를 시행하면서
프랑스어를 쓰던 귀족들에게 영어를 쓰도록 권장했으나
시몽 드 몽포르가 만든 의회제도에는 호의적이라 더 발전시키며 '모범의회'로 개선시킨다.
내적으로 왕권을 강화시킨 에드워드1세는 국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브리튼섬 평정에 나섰고
마침 귀네드왕국이 웨일스를 통일하여 웨일스 공국을 건국하자
세력이 커지기전에 짓밟기 위해 웨일즈 원정을 떠나고
1284년 웨일스를 잉글랜드에 합병한다.
이는 군신관계에서 끝난 헨리2세와는 전혀 다른 완벽한 정복으로서
웨일스는 영국연합중 가장 첫번째로 잉글랜드에 합병된 것 이다.
1292년에는 스코틀랜드 왕국에서 왕이 사고로 죽어 왕위 계승 분쟁이 일어나자
체스터조약으로 군신관계에 있던 잉글랜드왕국의 왕 에드워드1세가 껴서
자신의 허수아비노릇을 할 '존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왕의 자리에 올린다.
한편 아키텐 지방을 두고 프랑스가 원래 자신의 신하의 땅이니 이 땅을 몰수하겠다며 도발을 걸자
(아키텐지방이 매우 비옥한 땅임)
개빡친 에드워드1세가 무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허수아비 스코틀랜드의 왕 존 발리올에게 군사를 보내라고 명령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신음소리낸다고, 오히려 존 발리올이 군대를 일으켜서 전쟁으로 스코틀랜드의 종주권을 빼앗고자 했다
그러나 에드워드1세에게 패배하여 존 발리올은 폐위되고
에드워드1세는 자신이 스코틀랜드의 왕이라며 스코틀랜드까지 합병한다.
이때 에드워드1세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상징인 '운명의 돌'과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마가렛의 검은 십자가상'을 런던으로 가져가 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개빡친다.
안그래도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서 무참하게 학살을 하고 있던 와중에 약탈까지 당하니
스코틀랜드인들은 금지되었던 전투본능을 봉인-해제 한다.
한편 스코틀랜드 각지에서 독립의 불길이 커지고 있을때
1297년 래너크에서 잉글랜드 병사들이 스코틀랜드인과 시비가 붙다가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화가난 잉글랜드 병사들이 그 스코틀랜드인의 아내를 죽이자
스코틀랜드인은 눈깔이 뒤집혀 래너크의 잉글랜드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봉기를 일으키니
그가 바로 '윌리엄 월레스'다.
스코틀랜드의 왕족과 귀족들이 잉글랜드인들에게 살살 빌고 있을때
월리엄 월레스는 각지에서 농민들을 소집, 잉글랜드 왕국의 병사들과 맞서 싸웠다.
아이샤이에서 옴스비를 패주시키고
스털링(리그8경기 6골 1도움)다리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 군을 이끌던 '휴 크래싱 행'을 죽여 가죽을 벗겼으며
스코틀랜드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잉글랜드의 요크 성을 점령하면서 요크성의 성주인 에드워드1세의 조카의 목을 잘랐고
그 소식을 들은 에드워드1세가 개빡쳐서 직접 전쟁에 참가한다.
윌리엄 월레스와 스코틀랜드의 군사들은
1298년 4월1일 폴커크에서 에드워드1세를 맞이하지만 거의 아작나는 수준으로 패배하고 만다.
에드워드1세에게 쫒기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윌리엄 월레스는
아이러니 하게도 에드워드1세 밑에서 일하던 스코틀랜드 기사에게 잡히고 만다.
비록 잡혔지만
그가 만든 스코틀랜드의 저항심과
그의 외침으로
스코틀랜드의 왕과 귀족,평민까지 잉글랜드에 반기를 든다.
스코틀랜드의 귀족과 평민들의 추대로 로버트1세가 스코틀랜드의 국왕임을 선포함과 동시에 독립을 선포하자
매일 화가 나있는 에드워드1세가 직접 전쟁에 참여하여 로버트1세와 치열하게 싸운다.
로버트1세와 스코틀랜드군은 에드워드1세의 잉글랜드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에드워드1세는 생각보다 강력하였고
결국 로버트1세의 군대는 참패하고 가족들은 포로로 잡힌다.
전쟁에서 참패 후 스코틀랜드군들은 게릴라전을 선택했고
로버트1세는 북아일랜드로 망명와서 세력을 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전부가 잉글랜드 세력은 아니었음)
때마침 윌리엄 월레스의 저주였을까
에드워드1세는 스코틀랜드 원정때 걸린 병으로 사망하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2세가 왕이 된다.
딱 봐도 호구같이 생긴 에드워드2세를 보며 로버트1세는 때가 됐다며
스코틀랜드로 돌아온다.
호구취급을 받자 화가 난 에드워드2세는 스코틀랜드군을 토벌하고자 했지만
1314년 배넉번 전투 에서 로버트1세의 스코틀랜드군에게 완패한다.
이때 로버트1세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여 잉글랜드군의 귀족 출신 기사 '헨리드 보헌'을 1대1로 맞짱떠서 이겼으며 승리한김에 같이 있던 종자까지 죽이는 무쌍을 자랑하지만
왕이 혼자 개돌했다며 다른 귀족들에게 혼났다고 전해진다.
한편 전쟁에서 패한 에드워드2세로 인해 에드워드1세가 올려놓은 왕권은 계속해서 추락하였으며
본인의 정치적 위상까지 바닥으로 추락하자
국왕에 대한 의회의 간섭은 더욱 강해졌었다.
심지어 에드워드2세는 간신들에게 휘둘리며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3세'의 영지를 빼앗으려하자
'에드워드3세'는 조상님들의 '왕위를 계승중입니다. 아버지' 계획을 실행하였고
1327년 프랑스공주 출신인 자신의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이 된다.
한편 잉글랜드가 왕위계승문제로 혼란스러울때
로버트1세는 1328년 실질적인 독립승인을 받고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왕이 된다.
<광고 타임>
윌리엄 월레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
로버트1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아웃로우 킹
(넷플릭스 전용)
재밌으니 스코틀랜드독립사가 궁금하시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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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가 독립전쟁과 왕위계승문제로 혼란스러울때
옆나라 프랑스 왕국에서는 다음 왕을 선출하기 위해 떠들고 있었다.
근데 죽은 왕은 후계자가 없는 대신 그의 여동생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잉글랜드 왕국의 왕 '에드워드3세' 였다
이 소식은 에드워드3세도 듣고 본인이 프랑스 왕까지 되는 상상을 했지만
여자쪽 왕후계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게르만의 '살리카법'으로 인해 '필리프6세'가 프랑스 왕국의 왕이 된다.
물론 살리카법도 에드워드3세 왕시켜주기 싫어서 사용한거다.
또 물론 에드워드3세도 이러한 이유들을 알고 있었으니
지 할애비처럼 개빡치고 만다.
누구를 닮았는지 무력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명분이 없자 만들기 위해
플랑도르 지역을 이용하기로 한다.
지금의 벨기에 지역인 이곳은 당시 유럽 최고의 모직물 생산 지역이었는데
모직물을 만들기 위해 양털을 수입하는 곳이 당시 유럽 최대의 양털 수출국이던 잉글랜드였다.
플랑도르 옆에 있던 프랑스 왕국은 돈 잘버는 플랑도르에게 많은 세금을 걷고 있었다가
잉글랜드가 플랑도르에 양털 수출을 막자
프랑스의 짭짤했던 세금은 막히고 만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플랑도르가 잉글랜드의 편이 되는 조건으로 수출을 다시 시작하니
플랑도르까지 잉글랜드에게 빼앗긴 개빡친 필리프6세는 스코틀랜드를 지원해주면서 프랑스내 잉글랜드 영토인 아키텐 지방을 몰수하겠다고 협박한다.
프랑스왕위문제+아키텐지방문제+플랑도르문제등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로 갈등을 빚자
에드워드3세는
본인이 진정한 프랑스 왕국의 왕이자 잉글랜드 왕국의 왕이라고 선포한다.
이 소식을 들은 필리프6세는 군대를 이끌고 아키텐 지방을 몰수하였고
명분이 생긴 에드워드3세가 필리프6세에게 선전포고하니
1337년
100년 전쟁이 시작된다.
브리튼섬의 역사 4편. 스코틀랜드 독립전쟁
1편 https://m.fmkorea.com/2311433925 2편 https://m.fmkorea.com/2313061805 3편 https://m.fmkorea.com/2314599638시몽 드 몽포르를 중심으로 뭉친 귀족 세력들의 대규모 반란은 헨리3세의 국왕군을 상대로 승리한다.이때 헨리3세와 함께왕세자 '에드워드1세' 가 포로로 잡혀 탑에 갇히는데시몽 드 몽포르가 의회를 소집하고 있는 틈을타에드워드1세는 탈출하여(현대의 글로스터 공작)글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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