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고 요동을 점령했다고 한다면?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 시점에서 이성계와 고려의 5만 군대는(전투병은 4만 이하) 이런 도전에 직면해야 합니다.




1. 주원장의 6왕
주원장 휘하에서 특별하게 공을 세워 왕으로 까지 추봉된 여섯 명입니다.
서달, 상우춘, 등유, 탕화, 목영, 이문충이 그들이고 위화도 회군 시점에서 생존한 사람은 탕화와 목영입니다.

탕화는 고향으로 가서 숙청 피한걸로 유명하지만, 1388년 시점에서는 아직 내려가기 이전이었고,목영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으니, 

위협이 과중되면 그들이 수만 군대를 이끌고 올 겁니다. 물론 이들은 원나라 군벌들하고 싸운 경험이 있고



2. 풍승, 부우덕, 남옥, 경병문

6왕 이전에, 이 당시에 왕성하게 활동하던 장수들이 이런 장수들입니다.
당장 남옥은, 위화도 회군이 벌어지던 바로 그해, 군사 15만을 이끌고 몽골을 완전히 짓밞아버렸씁니다.
부우덕은 20만 대군으로 위화도 회군 직전인 1387년에 요동의 나하추를 항복시켰씁니다.

명나라가 이 시점에서 요동에 군단을 파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남옥이나 부우덕이 활동하던 그 시기를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3. 주체

그리고, 요동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인 북평은, 다름 아닌 미래의 영락제, 주체의 영역입니다.
주체는 정난의 변에서, 물론 건문제의 삽질이 있긴 했어도 불리한 전력으로 계속 싸웠을 정도로 군사적인 능력이 있으며,
주체의 밑에 있는 군단만 하여도 당시 고려의 전군을 능가하는 숫자고,

훗날 황제 시절에 무려 50만을 이끌고 몽골을 직접 수차례 왔다갔다 할 정도로 호전적이었고...




즉, 이성계는 요동에 진출하는 순간

부우덕과 남옥을 무찌르고탕화와 목영을 무찌르며,북평의 주체까지 모두 때려눕혀야 요동을 확실하게 손아귀에 집어넣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남옥이나 부우덕이나 한번 움직일때 동원하던 군사가 
15만, 
20만이나 되는 숫자였고,


고려 요동 정벌군의 숫자는,


共三萬八千八百三十(공삼만팔천팔백삼십) : 모두 3만 8천 8백 30명이고

傔一萬一千六百三十四(겸일만일천륙백삼십사) : 심부름꾼이 1만 1천 6백 명이었다.



 실제적인 전투병은 3만 8천 30명

군대의 보급에 대해서는,

以崔瑩(이최영) : 최영에게

兼海道都統使(겸해도도통사) : 해도 도통사(海道都統使)를 겸하게 하였다.

瑩白禑曰(형백우왈) : 영이 우에게 아뢰기를

臣任事旣多(신임사기다) : “신이 일을 맡은 것이 이미 많은데  

又都統海道(우도통해도) : 또 해도를 도통(都統)하면

臣恐不堪(신공불감) : 신이 감당하지 못할 듯합니다.

且今戰艦纔百艘(차금전함재백소) : 또 지금 전함이 겨우 1백 척밖에 안 되며

戍卒僅三千(수졸근삼천) : 수졸이 겨우 3천 명입니다.

臣若行師(신약행사) : 만일 군사를 출동시킨다면

當用兵萬餘(당용병만여) : 1만 명은 써야 하겠는데

倉廩匱竭(창름궤갈) : 창고가 모두 비었으니

何以供億(하이공억) : 어떻게 공급한단 말입니까." 하였다.

禑曰(우왈) : 우가 이르기를

備禦事劇(비어사극) : “방비하고 막는 일이 급하므로

不獲已(불획이) : 부득이

以卿兼之(이경겸지) : 경으로 겸하게 하는 것이니

其無固辭(기무고사) : 굳이 사양하지 말라.

且以吾國軍需(차이오국군수) : 또 우리나라의 군수(軍需)로써

餉萬餘兵誠難矣(향만여병성난의) : 1만여 명의 군사를 먹이기가 참으로 어려우니

請卿用三千(청경용삼천) : 경은 3천 명의 군사를 써서

使一當百(사일당백) : 한명이 백명을 감당하게 하라." 하였다.




원정이 아니라, 내지에서 군사 1만명 보급이 어려워서,3천명으로 한명이 백명씩 당해서 싸우라고 드립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이성계가 수성도 아니고 되려 원정을 해서도장깨기 하듯이 북평의 주체까지 때려눕힌다면,

아마 그는 한니발, 나폴레옹을 모두 양 발 아래 깔아뭉개는 역사상 초유의 전쟁의 신,전쟁 그 자체가 될 지도 모릅니다.



자....이성계 입장에서 보자면 3만 8천 명 이끌고 
15만 군대의 남옥을 무찌르고 20만 군대의 부우덕을 격파하며,
탕화를 무찌르고 목영의 기병을 격파한뒤,
10만 이상의 군대를 거느리고 북평에 있는 주체를 무찌르는 일과,


말을 되돌려서 이런 명령을 내린 왕에게로 달려가는 일 중에
어느 쪽이 좀 더 쉬울지는 상상하기 편하지 않나 싶습니다.

 

고려 말 위화도에서 이성계가 회군을 안하고 요동을 점령하려고 했다면 처했을 상황.txt : MLBPARK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이 시점에서 이성계와 고려의 5만 군대는(전투병은 4만 이하)…

mlb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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