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침몰사건 희생자 중 한국과 관련있는 의외의 인물

 

1849년 잉국 엠블턴에서 태어난 William T. Stead는
잉국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한 언론인이었음.

오래전 사람인만큼 언론인으로서 여러가지 업적을 가지고 있는데
몇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최초로 여성기자를 고용한 사람이고,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문제였던 매춘굴과 음주굴의 실태를 알리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도록 활발히 알렸던 사람임.

 



 

62세이던 1912년에 그는 타이타닉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데,
안타깝게도 타이타닉 침몰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오른쪽 맨 밑 비뚤어진 네모 사진이 William T. Stead)
그는 1등석의 저명한 언론인인데다가 노인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구조될 수 있었지만
구명정에 다른 승객들이 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의 구명조끼를 건네주는 등
마지막까지 여러 선행을 한 후 흡연실에서 독서를 하다가 익사했다고 함.



그러나 그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은
언론계에 최초로 인터뷰 기술을 도입했던 일

그는 그가 고안해낸 그 인터뷰 기술로 1907년,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을 인터뷰하게 되는데

 



 

바로 헤이그특사의 이위종 열사를 인터뷰했음 (맨 오른쪽)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로 보내진 헤이그 특사는 대한제국의 사절단으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입장하려고 했으나 실패.
러시아 정부에서 대한제국의 사절단들은 입장시키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

세 사람은 의장한테까지 찾아가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설명하고 들여보내달라고 했음.
의장 개인적으로는 동정했지만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서 결국 실패

이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William t. Stead가
헤이그 특사 중 한명이었던 이위종 열사를 인터뷰하고
만국평화회의보에 그 내용을 헤이그 특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실어버렸음.

 



 

이 덕분에 세사람은 언론전에 귀빈으로 초대받아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위종 열사가 영어 독어 불어에 능통해 직접 연설하게 됨.
기자들은 그의 연설을 듣고 만장일치로 한국지지 결의문을 채택.

이 연설문의 전문은 다시 William T. Stead에 의해 만국평화회의보에 실려졌고
많은 언론인과 운동인들을 자극하게 된 사건이 되었다고.

재미있는건 이위종 열사가 전주이씨라 고종과 친척쯤 된다고 생각했던 서구의 언론인들은
이위종 열사를 prince 라고 보도하기도 했다고 함.
사실 전주이씨 이긴 하지만 광평대군파라 고종과는 아주 먼 사이.

비록 William T. Stead는 1904년 맺어진 영일동맹 때문에 일제를 비난하는 것은 꺼려했다고 하지만

그 의의는 충분히 높이 평가할만한 가치가 있음.

William T. Stead는 아직까지도 언론계의 참언론인 이미지로 남아있다고...

 

타이타닉 침몰사건 희생자 중 한국과 관련있는 의외의 인물

1849년 잉국 엠블턴에서 태어난 William T. Stead는 잉국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한 언론인이었음.오래전 사람인만큼 언론인으로서 여러가지 업적을 가지고 있는데몇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최초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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