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튼섬의 역사 6편-장미 전쟁


오늘 나올 등장인물들입니다.

원안에 있는 이름들만 알아도 상관없습니다.

헷갈리시면 사진만 따로 받아서 같이 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시작

 

 

 

 


백년전쟁도중

 

랭커스터가의 헨리5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생후 9개월 된

 

랭커스터가의 헨리6세가 왕이 되었으나

 

어렸던 헨리6세는 신하들에게 휘둘렸고

 

백년전쟁에서는 계속 패배만 하자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그러던중 신하들의 지시로

 


랭커스터가의 헨리6세가

 


프랑스 앙주의 마가렛과 결혼하는데

 

그녀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야망이 컸던 마가렛은 왕정을 차지하기 위해

 

자기 세력에 위협이 될 만한 사람들을 가차없이 제거하였고

 

그중

 

가장 못 미덥게 생각한 인물이

 


요크가의 공작 리처드 였는데

 

그는 왕과 가장 가까운 측군이자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던 장군이었기 때문에 마가렛이 함부로 제거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리처드가

 

국왕 랭커스터가의 헨리6세에게 백년전쟁과 국가 재건을 위해

 


의회 소집을 요청하였는데

 

여기서

 



랭커스터가의 서머싯 공작과 의견충돌이 일어나면서

 


안그래도 사이가 안좋았던 리처드의 요크가문

 


서머싯의 랭커스터가문의 사이가 더 안좋아지게 된다.

 

 

(랭커스터가의 헨리5세가 왕이었을때 요크가의 리처드의 아버지가 반역을 들었다는 이유로 처형되어 사이가 나빠져있었음)

 

 

갈등이 깊어지자 당시 왕이었던

 


랭커스터가의 헨리6세를 이용하여

 

실질적 실권자였던

 



마가렛과

 


랭커스터가의 사람들은

 

요크가의 리처드를 배척했으나

 


국왕이던 랭커스터가의 헨리6세에게 정신병이 발생하여 나라를 통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왕의 가장 가까운 측군이던

 


요크가의 리처드가 왕을 대신하여 섭정하는

 


(왕의 권한을 가질 수 있음)

'호국경'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헨리6세의 정신병은 금방 완치되었고

 

다시 실권자가 된

 



마가렛은

 



랭커스터가의 서머싯 공작에게 권력을 주면서

 

요크가의 리처드를 누르고

 

랭커스터가의 서머싯 공작이 권력을 잡도록 만들었다.

 

 

 

권력에서 멀어진

 

요크가의 리처드는 추방당해

 


아일랜드로 유배당하지만

 

마가렛과 그의 신하들로 인해

 


(이시기가 잔다르크가 등장하면서 역전될때)

 

잉글랜드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계속 패배하고

 


내부는 부패한 상황이 지속되자

 

사회적 불만이 커진틈을 타서

 


요크가의 리처드가 군대를 일으킨다.

 

잉글랜드의 병사들은 부패한 왕정 대신 충신장군 리처드를 따라 전쟁에 참여하여

 


1455년 세인트올번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랭커스터가의 서머싯 공작은 전투에서 전사한다.

 

장미전쟁의 시작을 알린 세인트올번스 전투에서 요크가의 승리를 안긴 리처드는

 

비록 왕권 장악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호국경'으로 재임명 된다.

 

또한 요크가의 리처드와

 


후계자들은 왕위계승권을 부여 받는다.

 

그러나

 


1460년 웨이크필드 전투에서

 

요크가의 리처드를 잡기 위해

 


랭커스터가의 군대가 쳐들어왔고

 

참모들이 요크가의 지원군이 올때까지 기다리자 했으나

 

요크가의 리처드는 기다리지 않고 싸움에 응하다가

 


사망한다.

 

--------1부 끝--------

 

 

1461년

 

요크가의 리처드까지 사망하면서

 

모든 권력을 잡은

 



마가렛은 나라의 재물을 모두 탕진하였고

 

그로인해

 

랭커스터가의 군대가

 


주변을 약탈하며 군대를 유지하자

 


랭커스터가에 대한 국민의 민심은 바닥을 찍고 만다.

 

 

그 틈을 타

 

요크가의 리처드의 아들

 


(극중에서 진짜로 에드워드4세 역이십니다)

 

요크가의 에드워드4세가

 

군대를 이끌고 런던으로 진격하여 랭커스터가와 전투에서 승리한다.

 

전투에서 승리 후

 

왕권을 장악한 요크가의 에드워드4세에 의해

 


국왕 랭커스터가의 헨리6세는 포로가 되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은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가 왕이 된다.

 

그러나

 

이를 반대한 랭커스터가의 귀족들이 군대를 이끌고

 


토우턴에서 요크가의 에드워드4세와 전투를 벌였으나

 

에드워드 4세의 실질적인 전략가

 


워릭 백작의 뛰어난 전략으로 랭커스터가의 귀족들은 패배한다.

 



권력을 잃은 마가렛은

 


아들 랭커스터가의 웨스트인스터의 에드워드를 데리고 해외로 도망간다.

 

한편

 


왕이 된 요크가의 에드워드4세는 프랑스 공주가 아닌 평민출신의

 


(이분의 일대기를 다룬 '화이트퀸' 보세요.)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하여 귀족들의 반발을 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의 누나를

 

프랑스 왕자와 결혼시키는 문제로

 

워릭백작이 프랑스에 가있는 동안에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에드워드4세의 누나를

 

부르고뉴 공작에게 시집보내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고

 

요크가의 가장 큰 지원군이었던

 

워릭백작이 배신감에 등을 돌리게 된다.

(귀족들에게 명예는 매우 중요, 근데 프랑스에 간 워릭 백작은 거짓말쟁이가 되버림)

 

그 후

 


국왕인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와

 


워릭 백작 사이에 갈등이 지속되자

 

결국 둘 은

 


결별한다.

 

그리고

 


워릭 백작은

 



마가렛과

 


랭커스터 가문과 손잡고

 

형을 질투하던 에드워드 4세의 동생

 


'요크가의 조지'도 랭커스터 가문과 손을 잡는다.

 

 

지원군을 얻은 워릭 백작은

 


랭커스터가의 헨리6세의 왕위 복권을 선언하며 이를 지지하는 세력들을 규합하여

 


에드워드 4세를 압박한다

 

 

결국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는

 


네덜란드로 도피한다.

 

그리고

 


랭커스터가의 헨리 6세가 다시 왕이 된다.

 

그러나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가 세력을 재정비하여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랭커스터가와 전투를 벌였고

 


1471년 바넷 전투에서 랭커스터가를 상대로 승리한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워릭 백작은 전사한다.

 

이 전투로

 



마가렛은 포로가 되어 런던탑에 갇히게 되었고

 

그의 아들

 


랭커스터가의 웨스트인스터의 에드워드가 전투로 전사하였으며

 


헨리 6세 또한 다시 포로가 되어 부부가 런던탑에서 사망한다.

 

이로써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가 다시 왕이 되어

 


랭커스터 왕조는 막을 내리고

 


요크 왕조가 시작되면서

 

한동안 평화가 지속되는듯 했지만...

 

--------2부 끝--------

 

 

 

1483년

 

건강이 악화되어 41살의 나이로

 


요크가의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고

 

그의 어린 아들

 


요크가의 에드워드 5세가 12살로 왕이 되자

 

자신이 죽으면 왕권이 약해질 것을 걱정한 에드워드 4세는

 


(곱추였다함. 연극에서 리처드 3세 역할을 맡으신 배우 황전민 님)

 

자신의 동생, 요크가의 리처드 3세에게 아들 대신 섭정을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요크가의 리처드 3세는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의 결혼은 정통성이 없는 결혼이라며

 

1483년

 


본인이 조카 대신 왕이 된다.

 

그리고 에드워드 4세의 자식들이면서

 

전왕이었으며

 

현왕, 리처드 3세의 조카들인

 


요크가의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남동생을 런던 탑에 가둔다.

 

그 후

 


그 둘은 행방불명 된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복수를 다짐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리처드 3세를 몰아내기 위해

 


랭커스터가의 마가렛 보퍼트와 손을 잡는데

 

그들은

 

왕위계승 순위는 매우 낮았으나

 

랭커스터가의 마지막 남은 핏줄이던

 

마가렛 보퍼트의 아들

 

 

(헨리 7세 사진이 별로 없어서..ㅎㅎ..ㅈㅅ..ㅋㅋ!!)

 

랭커스터가의 헨리 7세를 프랑스에서 데려와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딸인

 


요크가의 엘리자베스와 혼인시켜 내전을 끝냄과 동시에 왕위를 되찾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리처드 3세에게 들켜 계획이 틀어지고

 

오히려 자신의 아들과 엘리자베스를 혼인시키려고 한다.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가문끼리의 결혼이 당연시 되던 시절)

 

그런데

 

리처드 3세의 아들이 갑작스럽게 죽자

 


요크가의 리처드 3세가

 


요크가의 엘리자베스와

 


혼인 하려한다는 소문이 난다.

 

 

 

아무리 왕족이라도 아직 리처드 3세의 부인이 살아있다는 것 과

 


삼촌과 조카 사이의 결혼이 귀족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자

 

애초에 자신의 두 오빠를 죽인

 


리처드 3세의 가족과 혼인할 생각이 없었던

 


요크가의 엘리자베스는 잔머리를 굴려

 


자신의 삼촌인 리처드 3세에게 사랑한다고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공개 고백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리처드 3세를 따르는 귀족들이

 


고개를 저으며 자연스럽게

 


랭커스터가의 헨리 7세로 합류하게 된다.

 


랭커스터가와

 


요크가의 지원을 받은 헨리 7세는

 


1485년 프랑스에서 6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밀포이드 헤이븐에 상륙한다.

 

소식을 들은 리처드 3세는

 


8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레스터로 향하였고

 


랭커스터가의 헨리 7세와

 


1485년 보스워드 필드 전투에서 붙었지만

 


리처드 3세의 편에 있던 귀족들이 배신하여

 

랭커스터가의 헨리 7세의 편에 서게 되자

 


리처드 3세는 전투에서 패배하고

 

모든걸 포기 한 듯

 

혼자 적진에 뛰어들어

 


맹렬히 싸우다가 전사한다.

 

 

 

요크가의 리처드 3세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랭커스터가의 헨리 7세가 런던에 입성하였고

 

랭커스터가의 헨리 7세와 요크가의 엘리자베스가 혼인하니

 


랭커스터가와

 


요크가를 합친

 


튜더가가 탄생한다.

 

(헨리 7세의 풀네임이 헨리튜더)

 

 

또한

 

튜더가의 헨리 7세가 왕위에 오르니

 

요크 왕조는 막을 내리고

 

튜더 왕조가 시작되면서

 

30년간 벌여진 장미전쟁은 끝이 난다.

 

 



장미전쟁은 다른 유럽 전쟁과 달리

 

귀족 포로들을 귀환 시키는 전쟁이 아니었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장미전쟁동안 많은 귀족들이 죽으면서

 

귀족의 수가 절반이나 감소하였고

 

왕권은 반비례하여 강력해지자

 

잉글랜드 역사상 최초로

 

절대왕정 시대가 열린다.

 

브리튼섬의 역사 6편. 장미 전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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