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작 백제건국의 미스터리-백제의 초도는 천안 직산이다? -4부-

 

조선왕조실록의 세종편.

세종이 친히 고구려,백제,신라의 시조를 위한 사당을 세우고 그 뜻을 기려야 한다는 명을 내렸다.

 

 

 

 

첫 도읍지에 관해 설왕설래의 이설이 많아지자, 세종은 마침내 전국 각지에 남아있는 삼국의 도읍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라 명한다.

 

 

 

 

4년이 넘도록 방대한 양의 자료를 검토한 세종은 마침내 고구려는 평양에 신라는 경주에 그리고 백제는 위례산성이 있는 직산에 시조 사당을 짓도록 지시한다.

 

 

 

 

온조왕이 처음 나라를 세운 곳.

백제의 시초가 되고 기원이 되는 이곳을 후인들은 백제의 근원인 제원이라 이름한다.

그렇게 첫 도읍을 정한 백제는 세를 늘려 점차 북을 향해 뻗어 나간다.

 

 

 

백제의 뿌리가 고구려에 있기 때문에 '직산에도 동명왕 사당을 세웠다' 이렇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기록에? 분명히 나와있습니다. 여지승람에(동국여지승람). 그렇다고 하는 것은 , 왜 거기다가 동명왕의 사당을 세웠겠어요? 온조의 사당만 세우면 됐지. 아니면 비류의 사당을 세워야죠. 그런데 동명왕의 사당을 세웠다는 것은 늘 그들의 뿌리인 고구려를 생각했다는 것이고. 아버지 나라를 생각한거죠. 그래서 그들은 힘이 있으면 언제든 북으로 올라가려고 하거든? 아마 인지상정이다 난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힘이 있을 때는 북천(북으로 천도)을 했고 힘이 없을 때는 남으로 밀려 내려갔다."

 

 

 

 

한가위날 이른 아침.

천안 인근에 사는 조씨 일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례를 올린다.

이곳 직산읍은 직산 조씨의 집성촌이다.

 

 

 

직산을 본관으로 하는 직산 조씨 일가는 자신의 조상이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마을에 터를 두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이들의 시조은 조성(成). 백제의 10대 공신 중 한명이다.

 

 

 

"(조성(成)은)우리 족보에 있는데로 직산 조씨의 시조이시고 백제가 개국될 당시의 원훈 공로자로써 백제 개국공신이라는 칭호를 받으셨고 또 예성부원군(醴城府院君)이라는 직함을 받으시고 또 그 다음에 경양군(慶陽君)이라는 봉직을 받으시고 그 다음에 하남백(河南伯)이라는 직산에 원래의 봉직을 받으셨어요. 그리고 여기서 돌아가셨습니다.)

 

 

 


 

 

"원래 직산이 원래 백제의 개국초도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개국을 하셨는데... 13년간 이곳에서 주둔하고 있었거든요? 사시다가 나중에 서울 한성으로 이도를 했어요. 그러니까 13년간은 직산에 있었고 여기가 살기 비좁고 힘이 드니까 서울쪽으로 옵니다. 그래가지고 한성백제라 그래서 광주(경기도 광주. 원래 풍납토성 지역은 경기도 광주에 속해 있었다.) 쪽으로 옮겼습니다."

 

 


"천안 전씨,목천 마씨. 백제 십제공신[(十濟功臣) 마려(馬黎), 오간(烏干), 전섭(全聶), 조성(趙成), 을음(乙音), 해루(解婁), 흘우(屹于), 곽충(郭忠), 한세기(漢世奇)]의 한분들이 세거지가 거기(천안)였다고 하는것. 또 직산 조씨도 마찬가집니다. 그런 분들이 천안 일원에서, 지금도 사당이 있고 그들이 시조로 모시고 있다는 것은 또 족보에 나온다는 것은, 이거는 아주 결정적인 단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겁니다. 만약에 삼국사기,삼국유사가 없었더래도 그거만 봐도 나는 믿고싶은데 하물며 우리 최고의 사서가... 삼국사기는 물론 직산이라 찍진 않았어요. 그러나 모든 정황, 또 여러가지 지명. 이런걸 얘기했을 때에는 직산설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것이다..."

 

 


일년에 한번 청량한 가을을 맞아 천안 전씨들은 먼 조상을 기리는 시제를 올린다.

백제의 개국공신으로 역사에 기록된 전섭(全聶). 천안 전씨의 시조다.

 

 

 

"시조 환성군(歡城君) 할아버지가 백제개국 당시 온조왕을 보필해 가지고 열 신하가 같이 건국을 했기 때문에, 우리 천안을 고을로 해서 환성군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도 환성군으로 하고 있습니다. 위례성은 직산에 있는 위례성이므로 그 당시 개국했을 때 거기로(직산) 도읍한걸로 구전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온조 일행과 함께 남하했던 전섭의 후손들은 백제멸망 이후에도 천안 일대를 세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직산은 백제의 근원일까? 백제 초도의 역사를 찾는 것은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직산은 바로 그 고리를 찾는 열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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