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작 백제건국의 미스터리-백제의 초도는 천안 직산이다? -2부-

조선 성종시대의 대학자 서거정은 옛 충청도의 직산현을 지나며 1500여년 전의 옛 일을 추억했다. 그리고 그 감흥을 시 한수로 풀어냈다.


 

백제 옛 터에 풀이 절로 우거졌네
내 여기 오니 감개하여 마음 상하네
다섯 용 천안부에 싸워 피하고
한 쌍 봉황 위례성에서 울었네

 

신증동국여지승람 직산현  「제원부」

 

 

 

직산현을 백제의 옛 터라 굳게 믿었던 서거정은 아예 자신의 시제를 백제의 근원에 있는 누각에 올라 쓴 글이라며 제원루기라 명명한다.

 

 

 

그는 또한 백제의 첫 도읍인 위례성을 언급한다. 그는 왜 직산을 백제의 옛 땅이라 말한 것일까?

 

 

 

1927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는 여러 기록으로 보아 백제의 첫 도읍이 직산임이 분명하다는 기사를 싣고있다.

 

 

서울시 송파구 위례성길


지금까지 백제의 첫 도읍지로 알려진 곳은 서울시 송파구 일대다. 물론 사진에 나와있는 위례성길은 1986년 5월 29일에 처음으로 이름 붙여졌다.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 위례성로

 

근데 위례성길은 또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에 자리잡은 위례성로다.

 

 

 

"위례"라고 하는 말은 나는 전국의 지도를 놓고 보기도 했고 한글학회에서 나온 한국지명총람을 보았을 때, 절대 딴데는 볼 수 없었어요. 물론 북한은 제가 자료가 없어서 못 보았습니다만은, 남한에서 현재에, 오로지 천안시 입장면 호당리와 북면 운용리의 사이에 있는 위례성만이 "위례"라는 말이 있다.하는것을 보고서 이건 절대적이다."

 

 

 

충남 천안시 입장면과 북면 사이에 자리잡은 이 산은 위례산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산의 이름은 "위례"였다.

 

 

 

 

지금도 산 정상에는 편편이 조각난 기왓장이 흐드러지듯 널려있다.

 

 

 

 

위례산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위례산 정상부 뿐만 아니라 산 속 구석구석은 용도 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산물들로 그득하다.

 

 

 

위례산성에서의 흥미로운 유물은 돌무지다.

 

 

 

산 정상부에는 백여개의 돌무지가 흐드러지게 널려있다.

 

 

 

"얼마간 발굴 조사를 했더니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거죠. 감히 기대도 못했던 백제의 전형적인 백제식 토기. 조금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하면은 승석문토기(器). 요것은 백제토기에만 나오는 아주 전형적인 토기에요. 그후에 이제 발굴조사를 해서 또 뭐가 나왔느냐 하면은 사각형 무늬가 딱딱 찍힌, 이러한 격자가 찍혀져 있는 무늬가 나왔는데 요것도 백제시대에만 나오는 전형적인 토기입니다. 얼마나 놀랬겠어요? 얼마나 기뻐했겠어요?"

 

 

 

당시 위례산에서 발굴한 유물들 중 백제시대의 유물들은 모두 국립공주박물관 유물정리실에 소중하게 보관중이다.

 

 

 

위례산성을 백제산성이라 뒷바침 하는 증거는 바로 이 토기들이다.

오로지 백제시대에만 볼 수 있다는 승석문 토기와 삼족토기[삼세발토기라고도 하는데, 높이가 낮은 토기에 세 발이 달린 토기를 뜻한다. 청동제(靑銅製)의 것을 포함하여 삼족기(三足器)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백제의 토기에서만 볼 수 있는 토기형태인데, 세 발의 형태는 원형(圓形)과 뿔형(角形)이 있다. 뿔형으로 된 세 발은 칼이나 대나무 같은 공구로 6각이나 7각을 냈는데, 원형의 것과 같이 뾰죽하다. 직립한 아가리(口緣) 부분에 뚜껑을 받기 위한 턱(凸帶)이 주위에 돌려 있으며, 뚜껑에는 꼭지가 달린 것도 있고 달리지 않은 것도 있다. 꼭지의 모양은 뚜껑의 정상부에 굽을 축소시킨 것과 같은 모양과 단추 같은 모양이 있다. 뚜껑은 대개 표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드림새가 곧게 내려오거나 안쪽으로 쏠린 것, 그리고 밋밋하게 이어져 내려오기도 한다. 한편 원래 뚜껑 없이 사용된 무뚜껑식이 있는데, 발견되는 예는 극히 드물다. 뚜껑 없는 세발토기의 대표적인 것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것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공을 반으로 절단한 것과 같은 형태의 둥근 밑 용기에 짧은 원형의 세 발이 달려 있다. 또한 그릇의 깊이가 다른 세발토기에 비해서 깊고, 아가리 부분은 넓은 음선대(陰線帶)와 함께 입술부분이 둥글게 잘 마무리되었다.]는 이곳이 백제시대의 유적지임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발이 세개 달린 삼족기. 이거는 고구려에도 없고 신라에도 없는 백제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토기입니다. 그래서 아~ 이건 틀림없이 백제시대 것이구나라는 것을 확정을 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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