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 사건의 재구성
- 역사
- 2019. 10. 16. 11:51
이번 글에서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일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 대해 한번 적어보려고 해.
팔레스타인(블레셋인들의 땅)의 어원이 되는 블레셋 사람들은, 성서에서는 '갑돌'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 갑돌은 바로 크레타를 의미해.
블레셋인들은 미케네 문명의 몰락과정에서 생긴 '바다민족'의 일파로서,
팔레스타인 쪽에 정착하였고 이후 히브리인 등 주변민족들과 상쟁을 펼치게 되지.
그에 비해 그리스 계통의 민족으로 추정되는 이 블레셋 사람들은
히브리인을 포함한 팔레스타인-레반트 주민들에게 아예 종자부터 다른 숙적 이었는데.
이들은 한때 문명을 이뤘던 세계(그리스)에서 왔던 것이 유력한 만큼
초기에는 성서에서도 히브리인들이 알지 못하는 무기를 가지고 있던 민족으로 표현되고
삼손 등의 이야기에서도 이스라엘은 확실히 블레셋에 종속되어 있고
그만큼 미움을 받는 최대의 적으로서 등장하지.
*이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하는게, 이스라엘에서 왕정체제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야. 그리고 이 시기 고고학적으로도 히브리인들 뿐 아니라 아람인, 에돔인 등도 흥기하는데 비해 블레셋인들은 이후 성경에서도 악역에서 제대로 주목도 못받는 호구로 입지가 바뀌기 시작함.
이러한 역전의 과정에서, 구약성서 사관에서 최대영웅이라 할 수 있는 다윗의,
블레셋의 거대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야기가 등장한 것인데
이는 어린 소년이 물멧돌 하나로 완전무장한 거구의 전사를 쓰러뜨린 일로,
이런 극적인 스토리는 히브리인들을 넘어서 전세계적인 호소력을 지녀,
오늘날에도 약자와 강자의 대결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식어가 되었지.
이제 이 사건을 재구성 해보려고 함
일방적으로 블레셋인들이 우세하던 히브리인들과의 관계는,
이스라엘인들의 왕정체제를 도입하고 드디어 조직적인 전투를 치루기 시작하면서 역전이 되어가기 시작했어.
물론 블레셋의 저력도 만만치 않아 곧 이어 반격을 받아야 했고 전선은 다시 고착화 되었지.
골리앗: 야 우리 이럴께 아니라 일기토로 승부를 보자
사울: 야 재랑 싸울애 누구?
공주랑 결혼도 시켜주고 출세 책임져 드릴게...
아 씨 이러다가 내가 직접 저 거인이랑 일기토 뜨게 생겼네?
다윗(도시락 배달 온 소년): 제가 한번 맞짱을 떠보겠습니다.
장난하냐? 아무리 궁해도 그렇지....
야이 그래서 나를 내보낼꺼야 안 내보낼꺼야~
내 갑옷이랑, 칼이라도 줄게 그거라도 챙겨가라
그딴거 필요 없는데요?
그래 내 상대는 누구인가?
나다 씹새야
??? 완전 버리는 카드를 쓰네 ㅅㅂ
닥치고 나의 돌맹이를 받아랏!!!
골리앗 뒤짐
이 스토리에 관해서 아무리 김좌진 장군님 버프
아니 하나님 버프를 썼다고 해도
비무장한 소년이 돌맹이 하나로
무장한 거인을 쓰러뜨리는게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는 걸 알아
우선 골리앗의 키는 헬라어 성경에서 묘사되기로는 210cm 정도.
고대 인치라서 엄청나게 크기는 하지만..
뭐 아예 불가능한 수치는 아님...
그 다음에 다윗의 스펙을 보자 이런식으로 엣되게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위의 조각상의 묘사에 더 가까웠을꺼야.
성서에서는 다윗의 얼굴이 아름답게 생겼다고 했지,
체격이 왜소했다거나 하는 묘사는 전혀 없고
다윗은 이 전투 이후로도 여러차례의 전투에서 전공들을 세움은 물론
사울에게 쫒겨 험준한 산악지대를 떠돌면서도 버텨내는 생존왕의 면모까지 보여주니까.
그리고 사울이 "에이 설마 니가..." 라는 식으로 못미더워할 때,
다윗은 자신의 목동일 하면서 사자와 곰을 상대했던 일을 PR하는데
양치기나 목동이라고 하면
양치기 소년 우화와 더불어 뭔가 평화롭고, 목가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실제로 양치기들을 수십 km의 험지를 하루에 주파하는 것은 예사인 사람들로,
현대로 치면 철인 3종 경기 스포츠 선수들이나 마찬가지였어.
지금도 정말 '제대로 된' 목동들은 멧돌 등을 이용하여 맹수를 쫒아내는 일 쯤은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으며
로마군도 공포에 떨게 했던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의 핵심 전력도 검투사와 함께 이 양치기들이었어.
그만큼 존나 쌘 형들 이라는거.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시 다윗은 전투경험이 일천했고
골리앗은 블레셋측에서 일기토 대표로 내보낼 정도로
검증된데가 풍부한 경험을 갖춘 블레셋 최고의 전사였겠지.
거기에 다윗은 멧돌 말고는 무장을 하지 않았고 골리앗은 완전무장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물멧돌이라고 번역 되어서 별거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윗의 썼던 것은 '슬링' 이라는 무기로,
오늘날에도 목동들이 맹수들을 쫒아내는데 쓰이고,
다윗과 같은 히브리 유목민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이나 조선과 같은 국가에서도 이와 관련한 부대를 따로 운용하였고
르네상스 시절이나 일본 전국시대에서도 이 슬링이 전투에서 쓰였으며
신미양요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다케다 신켄의 미카다카하라 전투에서도
이 슬링부대들의 활약이 기록되어 있어.
이 슬링의 장점은 소년이나 여성들도 쉽게 다룰 수 있으면서,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던 무기라는 것인데
다윗이 정말 소년티를 못벗은 호구였다고 하더라도
이 슬링기술만 잘 익혔다면 골리앗 같은 거인을 상대로도 충분히 해볼만한 싸움이었으며
게다가 사자와 곰을 쫒을 정도의 능숙한 목동 이었던 다윗의 경우에 대입해보면
주로 80~190cm 정도의 줄, 천, 끈 등으로 만들어진 이 슬링이라는 무기는
원심력을 극대화 시켜 정말로 사자와 같은 맹수를 상대하는데 쓰였으며
숙련된 투석병의 경우 시속 140km 정도의 구속으로 돌을 날릴 수 있었고 그 유효사거리는 200~300m에 달했다고 해.
그리고 다시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의 현장으로 와서,
사자와 곰까지는 과장이라고 쳐도
다윗도 목동일을 했으므로 최소한 늑대정도는 상대 했을텐데
그런 맹수들에 비해 훨씬 둔하면서도
2m가 넘고
게다가 가까이에 있었던
표적 골리앗은
다윗에게 그매우 쉬운 상대였을 꺼야.
그리고 다윗 정도면 구속 100km 정도는 넘겼을텐데...
일단 이거를 이마에 정통으로 맞는 순간
골리앗이 아니라
항우나 사자왕 리처드라도 살아남았을리가...
즉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재구성 해보면
슬링의 고수 다윗의 정배였으며
골리앗이야말로
좆간 주제에 물리의 법칙에 도전한 무모한 놈이었다는 것 ㅇㅇ
물론 다윗의 슬링을 숨겨서 나와서 골리앗의 슬링을 제대로 못 봤을 가능성도 존재하기는 함.
그리고 다윗이 사울이 준 갑옷과 칼을 거부한 것도 슬링을 위한 최대의 기동력과 파괴력을 위한 조치 였던 것.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다윗은 종교적 신념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이 싸움에 임했고
자신의 최대 장점과 상대의 최대 약점을 잘 파악한(물론 멘탈적으로는 종교적인 신념이 케어해줬겠지만)
그의 지략과 용기가 만들어낸 승리라고 볼 수 있을 꺼야
결국 인생은 한방이라, 이 전투 이후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고 출세의 기도를 달리며 결국 사울 집안의 왕좌를 뺴앗고 왕까지 됨.
이상으로 현대 물리학의 법칙에 도전했던 남자 골리앗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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