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호웅 2020. 2. 29. 10:08
양 측은 전쟁 기간 내내 엄청난 양의 식량을 전방으로 실어 날랐다. 영국 측만 하더라도 기록으로 남아 있는 총량이 324만 948톤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선의 병사들은 충분한 식량을 제공 받지 못했다. 전방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상당량이 적의 포격이나 열차 사고 등의 이유로 분실되거나 도난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배급 받은 식량의 질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맛은 고사하고 운반 도중 상하지만 않았으면 다행이었다. 결국 양과 질 모두에서 병사들이 배급받은 식량은 굉장히 미흡했다. 병사들에게 있어 따뜻한 음식은 일종의 사치였다. 요리된..
역사 호웅 2020. 2. 28. 17:29
양 측은 평소 상대방의 배치와 방어 태세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상시로 청음 초소와 지하 땅굴을 운영했다. 그러나 지휘부는 언제나 보다 정확한 정보를 원했고 결국 무인지대를 순찰함과 동시에 보다 적 참호에 가까이 접근하여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 올 정찰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정찰조는 정찰 과정에서 적들의 대화나 예상치 못한 활동의 소리를 듣곤 했고 운이 좋으면 적의 초병이나 정찰병을 생포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찰조는 오히려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자신들이 정찰 과정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정확하게 기억해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휘부가 정찰조를 계속해서 운영했던 것은 이러한 활동이 정보 수집도 목적 이외에도 부수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휘부는 정해진 순번에 따..
역사 호웅 2020. 2. 28. 16:58
참호에서는 끊임없이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상대 참호에 돌격전을 감행하지 않고 단순히 아군 측 참호 내에 머물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참호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다름 아닌 적 포병대의 포격이었다. 물론 각 참호에는 이러한 적의 포격에 대비한 대피호들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어디에든 운이 없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들은 간헐적이든 대대적이든 하루에도 몇 차례 씩 이루어지는 적의 포격에 죽거나, 부상을 입거나 또는 흙더미에 의해 생매장되었다. 물론 이러한 포격에 의한 사상자 발생이 반드시 상대측에 의해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아군의 오폭도 마찬가지로 사상자를 발생 시켰다. < 독일군의 포격으로 사망한 병..
역사 호웅 2020. 2. 28. 16:40
계속되는 작업과 만성적 수면 부족, 적의 포격과 전장이란 상황에서 오는 극도의 긴장감 등 병사들을 괴롭히는 요인은 열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물과 같은 단순한 자연 현상도 때로는 병사들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곤 하였다. 지표가 해수면과 거의 동일하거나 더 낮은 경우에는 조금만 땅을 파도 물이 나왔기에 땅은 금방 진창으로 변하기 일 수였다. 배수로가 갖추어진 참호의 경우에는 그나마 상황이 좋았지만 배수로조차 갖추어지지 못한 참호는 항상 물이 흥건했으며 심할 경우 병사의 허벅지까지도 차오르곤 했다. 물과 진흙은 병사들의 체력을 계속해서 소모 시켰다. 심지어 진흙 속에서 탈진 또는 익사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역사 호웅 2020. 2. 28. 16:19
전선에 머무르는 병사들이 전쟁 내내 한 참호에서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교전 참호에서 근무, 지원 참호에서 대기, 예비 참호에서 휴식이란 기본적 절차에 따라 순환 배치되었는데 이는 병사들의 심리적 피로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었다. 다만 각 기간의 길이와 횟수는 일정하지 않았으며 또한 위기 상황 발생 시 교전 참호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교전 참호에서 어떤 때는 4일을, 또 어떤 때는 28일을, 극단적인 경우에는 51일 동안을 머무르기도 했다. 또한 한 구역에서만 계속 머물렀던 것도 아니었다. 구역 내에서 순환 배치가 이루어졌듯이 구역 간 순환 또한 이루어졌던 것이다. 구역 간 이동은 철도, 차량, 도보 행군 등을 통해 ..
역사 호웅 2020. 2. 27. 16:10
‘참호에서 보낸 1460’이란 책을 참조해 참호와 관련한 시리즈물을 작성할 예정입니다. 이번 글은 시리즈의 첫 번째 글로 참호에 대한 간단한 설명들을 사진과 함께 해볼까 합니다. 아무쪼록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호전은 흔히 1914년 9월에 시작된 걸로 본다. 독일 제 7예비군단이 슈멩데담 고지에서 영국 제 1군단의 전진을 차단한 것이 바로 이때이다. 이곳에서의 교착 상태는 곧 전 전선으로 확산되었으며 양 측은 본격적인 참호와 요새 구축에 들어갔다. 참호전이 시작된 것이다. 참호의 깊이는 통상 3미터 정도로 앞면은 흉벽, 그리고 뒷면은 배장이라 불렀다. 양면 모두는 강우나 토압, 포격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보강물을 따로 설치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급..
역사 호웅 2020. 2. 26. 16:25
천조장사전별도 왜란이 끝나고 돌아가는 명나라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선조가 마련한 연회를 그린 그림인데... 연회에 참석한 유당 김대현의 풍산김씨 문중에서 보관하다가 국학진흥원에 기탁 되었다고 해. 그리고 이 그림에는 흑인병사 해귀로 불리온 병사들의 모습 또한 묘사되어 있어. 실록에 기록된 해귀의 모습 "노란 눈동자에 얼굴빛은 검고 사지와 온몸도 모두 검다.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곱슬이고 검은 양모처럼 짧게 꼬부라졌다. 이마는 대머리가 벗겨졌는데 한필이나 되는 누른 비단을 반도의 형상처럼 서려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바다 밑에 잠수하여 적선을 공격할 수가 있고 또 수일 동안 물 속에 있으면서 수족을 잡아 먹을 줄 안다. 중원 사람도 보기가 쉽지 않다." 이 해귀들은 파랑국 즉 포르투갈 사람으로 소개되며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