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호웅 2020. 4. 1. 10:08
아무리 성욕 또는 사랑에 눈이 멀어도 저 정도 상황인데 끝까지 속은 삼손
역사 호웅 2020. 4. 1. 10:03
오늘날 일본의 국호가 원래 백제 땅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국호 성립에 백제인들이 관여했다는 학설이 제기됐다. 660년 백제 멸망 당시 의자왕과 당에 투항해 관리가 된 뒤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됐던 ‘예군’(禰/軍:613~678)이란 인물의 묘지명 문장에 새겨진 ‘일본’ 글자가 현재 일본의 국호가 아닌 백제의 다른 표현이라는 근거가 드러났다는 것이 뼈대다. 이런 주장을 꺼낸 이는 일본 고대사학계 권위자인 도노 하루유키 나라대 교수다. 이용현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사는 이달 나올 한국고대사학회 학술지 에 실은 기고문에서 도노 교수의 새 견해와 현지의 관련 심포지엄 논의 등을 소개했다. 글을 보면, 도노 교수는 지난 2월 일본 이와나미서점 소식지 2월호의 논고에서 지난해 중국 학계에 탁본으로 보고된 예군 묘지명 기..
역사 호웅 2020. 4. 1. 09:41
당나라 황실의 왕비가 된 백제 부여 공주 2004년 서안에서 백제왕가와 관련한 유물 하나가 출토되었습니다. 그것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부여 의자의 증손녀였던 부여 태비(扶餘太妃, 690년~738년)의 묘지명이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는 부여 태비의 존재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백제왕가의 혈손이었는지에 대해선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번 묘지명이 발견된 후 부여 태비가 의자왕의 증손녀이고, 당나라에 귀순해 백제 부흥 운동을 토벌한 부여융(扶餘隆, 615~682)의 손녀였음이 밝혀진 것이죠. #1. 당나라 황실과 연을 맺은 백제 왕족 부여씨 태비 부여 씨의 할아버지 부여융은 의자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부여융이 의자왕의 태자였는지에 대해 설이 분분합니다. 중국 측 기록에 따르면 일관되..
역사 호웅 2020. 3. 30. 10:03
영국-잔지바르 전쟁 제국주의 시기 전 세계에서 열심히 깡패짓을 하던 영국과 동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잔지바르와의 전쟁 1896년 8월 27일 오전 9시 잔지바르의 추장이 항구 밖에 정박해온 영국함대를 향해 선전포고 오전 9시 2분 마침 잔지바르 앞바다에 대기하고 있던 영국 군함 5척이 잔지바르를 향해 포격 개시 오전 9시 40분 잔지바르 항복 선언 영국군은 전사자 없이 부상자 1명 잔지바르군은 약 5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선전포고 → 전투 → 항복'이라는, 전쟁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추고도 단 40분만에 끝난 전쟁.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깨지기 어려운 기록일 듯 하다. 설명 잔지바르는 지금의 탄자니아 영토로 아프리카 동부 연안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역사 호웅 2020. 3. 29. 10:50
영국은 참호전으로 고착된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당시 다목적 용도로써 개발된 홀트 사의 수송용 트랙터를 기반으로 하여 전차라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였다. 먼저 무한궤도를 최초로 장착한 프로토 타입의 전차로써 리틀 월리라는 결과물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리틀 월리는 참호를 건너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한계로 인해 실전에 투입되지는 못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우리가 흔히 1차 세계 대전의 전차의 대명사로써 알고 있는 마크 전차가 등장하게 되었다. 영국은 1916년 9월 15일, 솜 전투에 49대의 전차를 최초로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계속해서 전선에 전차를 투입하였다. < 전선..
역사 호웅 2020. 3. 29. 10:48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제 1차 세계 대전 동안 중동의 아랍 게릴라 부대와 함께 싸운 영국 정보국 소속의 장교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에게 주어진 또 다른 이름이다. 그는 군인이기 전에 고고학자이자 사진작가이기도 했는데 우리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1962년도에 제작된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관련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중동에서 영국이 직면하고 있었던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1914년 10월 오스만 제국이 제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중동에 대한 영국의 이익은 큰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바스라 인근의 유전을 비롯해 중동에서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이익을 지키기 ..
역사 호웅 2020. 3. 29. 10:46
제 1차 세계 대전은 과거의 전쟁들보다 훨씬 더 많은 규모의 산업 기반이 동원된 전쟁이었다. 전선에서는 항상 많은 양의 총과 탄약, 그리고 병사들이 먹을 음식 등 각종 군수물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산업 규모가 더욱 팽창하게 되자 각 공장들은 수요에 맞춰 물자를 생산, 공급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모집했다. 그럼에도 공장의 인력은 매우 부족했다. 많은 수의 노동자가 전쟁 발발과 함께 전선으로 이동하면서 생긴 큰 공백 때문이었다. 이러한 공백을 채웠던 것은 당시 많은 수의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각종 공장, 광산, 실험실 근로자, 버스 운전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였으며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에 기여하였다. 물론 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어쩔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