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작 백제건국의 미스터리-백제의 초도는 천안 직산이다? -1부-
- 역사
- 2017. 2. 12. 18:39
1.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4년(BC 5년) 정월에 도읍을 옮겼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첫 도읍이 어딘지 알 수 없다 했다.
그리고 온조왕 14년 정월에 도읍을 옮겼다라고만 적혀있을 뿐이다.(이곳이 모두가 익히 알고있는 한성 백제 시대의 도읍이다.)
그렇다면 온조왕 1년~13년까지의 도읍지는 어디였는가?
역사서에 기록되진 않았지만 학자들은 백제 초도가 하북 위례성이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한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그 해답이 나온다.
삼국유사 왕력편 "위례성에 도읍했다. 사천이라고도 하며 오늘날의 직산이다."
여기서 적고 있는 위례성은 지금의 충남 천안시 직산읍 위례산에 있는 위례산성이다.
근거는 무엇일까?
근거는 조선팔도고금총람도에 있다.
뚜렷이 직산이라 적혀있다.
1685년 당시에도 현재의 직산읍을 분명히 직산이라 불렀다.
즉 백제의 건국 13년까지의 초도는 하북 위례성이 아니라 천안 직산이었다.
2.현 사학계가 백제 초도로 추정하는 하북 위례성에서 초기백제의 유물이 발견된 적은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인 신희권씨는 말한다.
"(백제 초도로)추정되는 위치가 크게 뭐 삼각산,북한산 일대 내지는 중랑천 일대 이정도로 규정이 되는데요. 실제로 그... 언급된 유적들에서 초기백제의 어떤 유물이나 확실한 유적이 발견되서 보고가 된 예는 없습니다. 따라서 고고학적인 증거자체는 근거가 상당히 희박하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3.삼국사기에 적혀있는 비류와 온조 일행이 한산에 도달한 뒤 부아악에 올랐다는 기록에서 한산은 북한산이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비류와 온조 일행이 한산에 도달한 뒤에 부아악에 올랐다고 전한다.
학자들은 한산을 현재의 북한산이라 추정한다.
과연 북한산을 한산이라 일컬었던 것일까?
"북한산은 삼각산 또는 화산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조에 들어와 가지고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북한산이라고 확정된 것 같습니다. 한산은 큰산이라는 뜻에 한산이 있고 말도 있고 한데 한산은 전국적으로 지금 현재 그.. 한산이라고 하는 마을이 한 11개 쯤 있고 한산에 대한 기록들은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가 되어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지금의 북한산을 북한산이라 부르기 시작한것은 조선이 건국된 이후이고 한산이란것은 큰산이라는 뜻으로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던 말이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아악은 어디란 말인가?
바로 경기도 평택에 있는 부악산이 삼국사기의 부악산으로 추정된다.
평택의 부악산을 살펴보기 전에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자.
삼국사기에 의하면,
비류와 온조는 함께 부아악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의 발길은 각기 달랐다. 온조는 비옥한 옥토를 택해 도읍을 정했지만 그와 달리 비류는 미추올이란 바닷가를 택했다. 널리 산 아래를 굽어 본 신하들은 척박한 땅인 미추올은 도읍으로 부당하다고 거듭 만류한다.
-삼국사기 내용-
이 하남땅은 북쪽으로 큰 강을 띠었고
동쪽은 높은 산줄기에 기대었으며
남쪽은 기름진 소택을 바라보고
서쪽은 큰 바다로 가로막혔으니
이런 자연적인 요해와 지리는
얻기 어려운 지세입니다.
이곳에 도읍을 세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평택의 부악산으로 가보자.
부악산 정상에서의 모습이다. 멀리 북쪽으로는 안성천이 보인다.
저 멀리 서쪽으로는 서해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삼국사기의 내용과 100% 일치한다.
그렇담 현 사학계가 한산으로 추정하는 북한산을 살펴보자.
북한산의 정상에서 바다가 안보인다는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삼국사기의 내용과 다르지 않은가?
4.미추홀은 인천이 아니라 아산 인주이다.
비류는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말 머리를 돌려 백성들을 둘로 나누어 길을 떠났다. 이후 기록에는 척박한 미추올에 살기 힘들었던 비류가 백성들을 이끌고 온조를 다시 찾아왔다고 전한다.
미추올이 백제 초도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지는 않을까?
"인천의 인주는 그 시절에 지리적으로 봐도 배를 댈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것은 여러 학자들이 얘기하고 있어요. 그걸로 볼때 나는 지명으로 봐도 되고... 고유지명이 미두리로 봐도 그렇고 (미추올은)현재 인천이 아니라 아산 인주의 미두리다. 이렇게 나는 믿고 있어요."
삼국유사는 미추올이 당시의 인주라고 기록한다. 삼국유사가 쓰여질 당시의 인주는 현재 아산만 일대다.
5.삼국유사의 북대한수는 한강이 아니다?
학자들은 삼국유사의 북대한수(北帶漢水)가 한강을 일컫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한수와 한강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김부식은 왜 온조왕조에만 유독 한강을 한수라고 쓴 것일까?
"북대한수를 한강이라 생각하니까 그런데, 그 한이라고 하는 얘기는 크다,넓다 이런 뜻이거든요? 한 없이 넓다. 한 없이 크다 할때 한이거든요? 그럴 때에 천안의 입장촌이 한내거든요? 옛날 이름이?"
<안성천>
아산만은 안성천이 흘러 서해로 빠져나가는 지역에 위치한다.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한수. 즉 큰강이 한강이 아니라 안성천이라면 삼국사기의 미추홀은 아산만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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