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국가였다 #2

월주는 고대 백제의 땅이었다.

험난한 바다를 건너와 백제인들이 진출했던 월주백제는 140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절강성 소흥시에 위치해 있다.


지금의 소흥은 5호 16국 시대까지는 월로 불렸다가 당나라 시기에 월주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이후엔 회계로 불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남송의 1대 황제 조구가 회계라는 지명을 소흥으로 바꾸면서 지금의 지명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의하면 백제가 남중국에 있던 동진과 왕래하기 시작했던 것은 근초고왕 27년이었던 372년 무렵부터 였다.

백제가 소흥 지역과 교류를 활발히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지역이 유명한 청자의 요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백제가 자연스럽게 소흥 지역과 교류를 하게 되면서 하나의 경제적인 거점을 확보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서 백제가 이 지역을 탐냈을 수도 있고 나아가서는 백제의 서쪽 경계가 월주에 이르렀다고 하는 기록을 중국인 스스로가 남길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백제의 해외 진출을 기록하고 있는 한서나 신구당서에 의하면 백제의 월주 진출 시기는 국내 기록에 나타난 4세기보다 훨씬 더 이전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아마도 백제의 적국이었던 신라가 백제가 멸망하면서 백제의 영광스런 역사의 기록들을 지운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때마다 신라가 더욱 더 싫어진다.

백제가 월주 지역을 차지했다는 기록이 중국 역사서에는 남아있는데 국내 역사서에는 없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단숨에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스스로가 백제의 월주 지역 진출 사실을 역사서에 기록할 정도였으면 이건 사실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라는 이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자신들의 보잘 것 없는 역사는 대대손손 보존되게 하고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는 무참하게 제거해 버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하지만 해외 역사서엔 기록들이 남아있는데 국내 역사서엔 그런 기록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삼국사기는 참으로 어이가 없다. 광개토대왕과 근초고왕의 기록들이 고작 한페이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광개토대왕은 아들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비 덕분에 그의 업적을 후대인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신라가 고의적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서들을 불태웠다는 가정은 절대로 지나친 가정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신라의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이었을 수도 있다.

자신들의 역사라고는 고작 외세의 침략에 대항한 역사였을 뿐이다. 백제와 갸야 그리고 왜의 연합군 조차도 그들 스스로 막을 수 없었기에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 그들이 한강 유역을 차지해 전성기를 맞이했던 것 또한 백제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후 나제동맹을 배신하고 백제를 공격한 건 너무나도 유명한 얘기다. 말이 삼국통일이지 사실상 당나라의 힘을 빌린 것 뿐이었다. 그래서 난 신라의 삼국통일이란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나당 전쟁도 토번이 아니었다면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삼국시대 이후 이른바 한민족이라고 불리우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신라의 역사와 똑같다.

외침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는 애초에 지속되지 말아야 할 국가였다.


월주 백제에 관해 설명하다가 말이 잠깐 샜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