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위대한 문화유산, 백제금동대향로 -1부-

<백제의 우수한 문화유산, 백제금동대향로>


1993년 12월 12일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나성(羅城) 사이의 작은 계곡에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용이 향로를 받치고 봉래산 위에서 봉황새가 날고 있는 모양이어서 처음에는 ‘백제 금동 용봉 봉래산 향로(百濟金銅龍鳳蓬萊山香爐)’라는 긴 이름으로 부르다가 이후 ‘백제 금동 대향로’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전체 길이 61.8㎝, 몸통 지름 19㎝, 무게 11.85㎏로 박산향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작인 백제금동향로는 뚜껑, 몸체, 다리 부분을 각각 따로 구리 합금으로 주조한 다음 하나로 만들어 금으로 도금하였습니다.


향로란?

향로란 향을 피우는 그릇으로 불구(佛具: 부처 앞에 쓰는 온갖 기물)의 하나입니다. 이집트, 유대교를 포함한 고대 중동문명, 고대 그리스, 라틴문화권에서도 사용되었지만, 동양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인도에서는 사람의 체취나 방 안의 악취를 제거하기 위하여 일찍부터 향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와같이 나쁜 냄새를 제거해 주는 향은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어준다는 의미로 변하여 석가모니를 비롯한 여러 부처들을 맞이하는 법당의 불전에 삼구족(三具足: 부처 앞에서 공양할 때 쓰는 세 가지 도구로 향로, 꽃병, 촛대를 이름) 또는 오구족(五具足: 촛대 두 개, 화병 두 개, 향로 하나)의 하나로 향로를 안치하게 되었습니다.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 금속공예술의 진수

6세기에는 백제 불교미술이 보다 완숙한 경지에 다다른, 전성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태어난 대향로는 불교적인 색채도 물론 가미 되었지만, 도교적인 성격이 좀 더 강하게 반영되었습니다.


용과 봉황의 구성, 수렵의 인물상, 상상의 동물들과 같은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이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찾을 수 있고,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탁은잔에 장식된 용의 모습에서도 도교적인 요소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백제의 장인들이 무령왕릉의 금속공예품을 장식할 수 있었던 예술적, 기술적 솜씨가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던 시기에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고, 백제금동대향로로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불교와 도교 등 그 당시 백제인의 수준 높은 종교적 신념과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하면 적절할 것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당시 백제인들의 여러가지 사상과 금동기술이 총체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왕실의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악취를 제거하고 부정을 없애기 위해 향을 피우던 도구로써 불교와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담고있는 보물인 백제금동대향로는 한 다리를 생동감 있게 치켜든 용이 갓 피어나려는 연꽃봉오리를 입으로 받치고 있고 그 위에 박산이 위치하는 형상이며, 꼭대기에는 봉황 한 마리가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습니다. 향로의 뚜껑인 박산은 중국의 동쪽바다 가운데에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이상향인 삼신산(三神山),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仗山), 영주산(瀛州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백제 금동 대향로에는 삼신산에 살며 불로장생한다는 신선들과 동물, 산수 등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향로의 맨 꼭대기에는 봉황이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활짝 펴고 서있습니다. 향로는 뚜껑과 몸체[爐身], 받침[臺座]이 별도로 주조(鑄造)되어 하나로 구성되도록 하였습니다.


이 향로는 아래로부터 음(陰)의 대표격인 용을 받침으로 하여 그 위의 몸체에는 수중생물(水中生物)이나 물과 관련된 동물을 연꽃잎에 배치하였습니다. 뚜껑부분에는 산악과 함께 지상의 동물 및 인물상, 신선 등을 등장시키고 그 정상에는 양(陽)을 대표하는 봉황을 두고 있어 음양의 사상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성은 천제[天帝: 봉황]와 오제[五帝: 다섯 마리의 새]가 주재하는 소우주(小宇宙)의 신산(神山)이며 이와 연결되는 신통의 매개물인 신수(神獸)와 신선이 그곳에 기거하고 이러한 신산으로부터 용이 승선(昇仙)을 연결시켜 준다는 박산향로에 보이는 사상적 전통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박산향로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오랜 시차를 두고 백제에서 출현하게 됨에 따라 백제적인 요소가 더욱 더 가미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음양의 조화나 신산의 표현 등 도교적인 요소와 향로의 몸체에 생동감 있게 표현된 연꽃잎과 그 위에 새겨진 동물들과 같은 불교적인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우주의 삼라만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교와 불교의 복합적인 요소는 무령왕릉 출토 동탁은잔(銅托銀盞)과 왕비 베개, 능산리 동하충의 벽화, 부여 외리 출토 무늬벽돌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는 기존의 박산향로에 백제의 사상을 복합시켜 새롭게 번안(飜案)한 백제만의 박산향로라 할 수 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 뚜껑 내부를 살펴보면 작은 연기구멍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뚜껑에는 봉황의 가슴 윗부분에 2개의 작은 구멍과 함께 다섯 마리의 새가 앉은 산봉우리 뒤쪽에 5개, 다섯 악사 앞에 솟은 산봉우리 뒤쪽에 5개까지, 총 12개의 크고 작은 연기구멍들이 있으며 이러한 연기구멍들은 둥글게 돌아가며 배치되어 있습니다.


봉황의 가슴에 뚫린 2개의 구멍을 제외한 나머지 10개의 구멍들은 솟아오른 산악의 뒷편에 가려져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적적으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사료와 유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백제사 연구에 다양하고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줍니다. 향로 윗부분에 묘사된 5명의 악사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백제인의 이런 구체적인 모습들이 잃어버린 왕국을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물론 이 향로에 등장하는 악사는 현실의 악사가 아닙니다. 태평성대에 봉황이 날아들고 천상의 악사들이 연주한다는 전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향로에 등장하는 악기만큼은 백제시대에 사용하던 악기를 그대로 본떠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백제의 악기에 관해서는 [일본서기]에 몇몇 이름이 보일 뿐 실제 모습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고대 미술사의 명품으로 대단한 찬사를 받고 있는 백제금동대향로 상단에는 다섯 명의 악사(완함, 종적, 배소, 거문고, 북)가 아주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다섯 악사는 향로 상단에 빙 둘러앉아 마치 맨 꼭대기의 봉황새와 기러기를 위해 연주하는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거문고를 제외한 4개의 악기는 현재 사라지고 없거나 연주법을 모르는 악기들이지만 백제시대에 실제로 사용된 악기라면 당시의 음악도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완함연주자

완함 연주자는 정면을 바라보는 봉황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완함 연주자는 두 발이 오른쪽에 오도록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으로 오른손으로 완함의 줄을 튕기고 있습니다. 동그란 울림통에 가늘고 긴 목, 3개의 줄이 있는 모양새는 미국의 밴조와 똑같습니다.

 완함은 둥근 공명통에 줄걸개를 박고 네줄의 현을 맨 모양으로 중국 진[晉]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함이라는 악공이 비파[琵琶]를 개량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현악기입니다. 완함의 악기모양과 연주모습은 고구려의 덕흥리 벽화분 삼실총 강서대묘 및 중앙아시아 일대의 불교 석굴사원에서도 나타납니다.

 완함은 보통 4현 악기인데, 백제 금동 대향로의 완함은 3현만으로 보여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삼실총 벽화에 그려진 완함도 줄감개는 네 개이나 3현만 나타나고 있어 백제 금동 대향로의 완함 또한 4현을 기법상 3현만 묘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종적연주자

완함 연주자의 왼쪽에는 무릎이 정면에 오게 꿇은 모습의 적[笛] 연주자가 있습니다. 적은 중국 사서[史書]에서 확인되며 원래 적은 입김을 불어 넣어 관 속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기명악기[氣鳴樂器]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주악상이 연주하는 악기는 안악 3호분 등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횡적[橫笛]과 달리 오른손을 위 왼손을 아래에 두고 세로로 잡고 부는 종적[縱笛]입니다. 여러 문헌과 유물들을 통해 미루어볼 때 백제 당시에는 종적과 횡적이 고르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배소연주자

종적을 연주하는 사람의 왼쪽에 위치한 주악상으로 배소[排簫]를 불고 있습니다. 짧은 관에 긴 관을 차례대로 배열한 모양은 놀랍게도 서양의 팬플루트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서양의 팬플루트(panflute)>


백제금동대향로의 주악상은 두 발이 오른쪽에 오도록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입니다. 배소는 길이가 다른 대나무를 옆으로 나란히 묶은 것으로 한 관[管]에서 여러 음을 내는 피리와는 달리 한 관에서 한 음만을 내도록 고안된 악기입니다. 배소는 일찍부터 중국에서 사용되었으나 원래는 북방 유목민족의 고유한 악기였습니다. 이 악기는 안악 3호분이나 덕흥리 고분과 같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이 중 오회분 5호묘에 그려진 사다리꼴 배소가 백제금동대향로의 것과 가장 비슷합니다.


거문고연주자

배소를 부는 사람의 왼쪽에 위치한 거문고 연주자는 편안하게 정면을 향해 앉은 모습으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거문고는 진나라 사람이 고구려에 보내온 7현금[七玄琴]을 왕산악[王山岳]이 개조하여 만든 악기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에 표현된 거문고는 3현이며 연주자는 왼손을 줄 위에 얹고 오른손에 술대를 잡고 줄을 튕기고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현악기인 거문고는 안악 3호분과 무용총 등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때 거문고는 백제의 거문고와 달리 4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악기를 거문고로 보는 근거는 연주하는 자세 때문입니다. 거문고는 악기를 무릎에 얹어놓고 연주하는 게 특징인데 반해, 일본의 고도, 중국의 쟁이나 금은 탁자 위나 맨바닥에 놓고 연주합니다. 향로의 현악기는 무릎 위에 놓였기 때문에 거문고로 보는 것입니다.


북연주자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의 왼쪽에 위치한 주악상으로 북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북 연주자는 편안하게 정면을 향해 앉은 모습으로 무릎 위에 북을 올려 놓고 왼손으로 북을 감싸 안고 오른손에 든 북채로 북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북은 당대에 공통적으로 연주된 대표적인 타악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백제금동대향로에 표현된 모양의 북은 중국이나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듭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발굴된 이래 고대 동아시아 최고의 미술품이자 백제문화예술의 상징입니다. 여기에 조각된 악기들은 당대 공예품의 상징적인 문양으로 인식되는 한편, 사실적인 모습으로 해석되어 부족한 백제 음악 사료를 조심스럽게 채워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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