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국가였다 #3

백제인들은 아마도 주산군도를 거점으로 월주 지역에서 활발한 무역 활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산군도를 지나 영파에 상륙한 다음 강을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월주 지역에 당도하기 때문이다.


백제인들의 활발한 무역 활동은 자연스레 그들의 집단 거류지를 형성시켰을 것이다. 월주 일대를 백제인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해서 서서히 월주를 잠식해 들어가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마침내 백제는 월주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백제의 서쪽 영토가 월주에 이르렀다고 하니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입장에서는 월주의 지명을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의도에서 행정 지명을 월주에서 회계군으로 바꿨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 월주 백제를 쉽게 인정하고싶진 않을 것이다. 더구나 백제의 패망을 이끈 당나라에서 영화로웠던 백제의 역사를 드러낼리는 만무하다. 그것이 월주 백제의 역사가 여전히 미스터리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백제의 영토가 월주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당서에 기록한 걸 보면 신라보다는 수십 수백배 낫긴 하다.


강력한 해상력으로 백제는 동아시아 곳곳에 담로라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백제의 부흥 운동을 일으킨 흑치상지도 담로 중 한곳이었던 흑치국의 왕으로 봉해진 사람이었다.

흑치국에 백제인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중국 당나라 때 이후에도 쭉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당서와 삼국사기 그리고 흑치상지의 사전인 장수전은 흑치상지를 백제의 서부인이라 밝히고 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백제 서부 지역에 요서군이니 진평군이 들어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몇백 년 동안 중국 사람들에 의해 말에서 말로 전해져 내려온 사실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중국의 남부 내륙쪽으로 백제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 보도록 하겠다.

중국에서 발행한 지도를 보면 광서장족자치구 안에 백제허라는 행정구역이 존재한다.

물론 이 지역의 명칭이 단순히 백제허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백제인들이 진출했을 것이다라고 추측을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나름 근거에 기반을 둔 추측이다. 그 근거를 지금부터 설명해 보겠다.

백제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백제허의 어느 시골마을에 살고있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인터뷰해 보니 자신들이 언제부터 여기서 살고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자신들의 선조는 산둥성에서 이주해 온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당나라에 압송됐던 백제인들도 산둥성을 거쳐갔다. 이런 맥락을 살펴볼 때 당나라 산둥성으로 끌려온 백제인들이 지금의 백제허로 끌려오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의 후예가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의문 하나하나가 백제사의 미스터리를 푸는 하나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험난한 왕조사의 그늘에 가려져 온 바다의 역사, 해상왕국 백제의 역사를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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