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국가였다 #1

6세기에 제작된 양직공도는 당나라에 파견됐던 사신들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에는 백제 사신의 모습도 있는데 그 설명을 보면 백제가 22개의 담로를 두고 그것을 왕족에게 나누어 주어 그곳을 지배하게 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왜국 역시 백제가 지배했던 담로 중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담로라는 말은 우리말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에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무로가 그것인데 한자 이름으로는 둔전병이라고 한다. 군대가 한 지역에 있으면서 평소에는 농사를 짓고 전시에는 군인이 되어 버리는 소위 기마민족 특유의 영토 확장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담로를 만드는 것은 백제 세력이었다. 백제 세력은 큰 담로를 두개 만들었는데 하나는 요동 반도의 서쪽에 위치했던 요서 백제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일본에 위치했던 왜국 백제이다.


역사서에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백제의 영토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있다. 특히나 당시의 역사를 가장 잘 나타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구당서와 신당서의 기록들을 보면 백제국은 서쪽으로 바다 건너 월주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왜국에 이르며 북쪽으로는 바다 건너 고구려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 기록들을 보면 우리가 알고있던 한반도 안에서만 머물던 백제의 영토가 북 대륙 및 일본에까지 걸쳐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백제의 부흥 운동 당시 나라의 사활을 걸고 전투에 임했던 왜국 역시 광활한 백제의 영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를 추정하게 한다.


역사의 기록에는 요서에 진출해 있는 백제의 기록이 나온다.

당시 백제의 항해술을 놓고 볼 때도 그렇지만 특히 4세기 이후에 백제는 이미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고 경기만을 장악했으며 중국의 남조, 북조와 교류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백제의 선단이 현재의 황해 북부를 통과해서 현재의 요서 지역까지 가는 일은 그다지 여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중국 정사 중 동전이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를 보면 묘한 글이 나온다.

위나라에서 대략 10만의 대군을 보냈는데 백제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후퇴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리상 위치를 정확하게 기재를 안했으므로 전투가 일어난 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요서에 진출해 있는 백제 세력과 위나라가 싸웠다라는 것이다.


요서 백제와 왜국 백제, 월주 백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역사적 사실들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아직은 낯설게 들리는 백제의 또 다른 이름들이다.


한서 지리지 28권 서기 100년의 기록을 보면, 회계의 바다 밖 동제인이 20여 국으로 분립하여 매년 내헌한다고 나와있다.

역사상 최초로 동제인이라 기록되며 시작된 해상강국 백제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백제는 결코 충청도와 경기도, 전라도에만 국한된 나라가 아니었다.

다음 시간에는 월주 백제를 중심으로 중국 내륙에 위치했었던 백제허와 백제향에 대해서 다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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