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위손을 보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너무나 무료해서 영화나 한편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보통 배우를 보고 영화를 판단하는 편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재미있는 영화'를 검색한다거나 '영화 추천'을 검색한다거나 하는 쓰잘데기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이런 짓을 하다가 손해를 본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유명한 배우들을 선별해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쭉 본 뒤, 평점 높으면서도 괜찮겠다 싶은 작품을 고른다. 물론 한국 영화는 사절이다. 한국 영화는 내용이 뻔하고 참신하지 못하다. 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 대부분의 한국 영화가 그러했다. 고로 난 무조건 해외 영화만을 본다. 오늘도 여김없이 배우 선별에 들어갔다. 내가 즐겨보는 배우들을 대충 나열해 보자면 톰 크루즈, 톰 행크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니 뎁, 짐캐리 정도가 있다.


오늘은 왠지 조니 뎁의 영화가 몹시 끌렸다. 조니 뎁의 필모그래피를 쭉 살펴봤고 그 중 평점이 가장 높은 영화인 가위손을 보기로 결정했다. 런닝 타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104분으로 내가 딱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가위손의 감독은 팀 버튼이었는데 팀 버튼의 페르소나가 조니 뎁이라는 사실은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서 그리 놀랍진 않았다.


소중한 돈 1,200원을 결제한 뒤 드디어 그 유명한 팀 버튼이 만들고 조니 뎁이 열연을 펼쳤다는 영화 가위손을 시청하게 되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평점은 역시 거짓말을 안한다. 1시간 40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청했다.


팀 버튼의 가위손은 애잔한 동화였다. 애잔이란 말 그대로, 애처롭고 애틋했다. 내 생각에 이 영화의 엔딩은 해피도 배드도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보면 배드에 더 가까웠다. 주인공 애드워드는 차라리 킴의 전 남자친구였던 짐에게 죽었어야 했다. 그게 오히려 해피엔딩이었을 지도 모른다. 애드워드는 영원히, 사랑하는 킴을 보지도 못하고 홀로 저택에서 쓸쓸하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애드워드를 미완성인채로 남겨둔 그 천재 박사가 악역이었던 짐보다도 훨씬 못된 것 같기도 하다. 만들다가 죽을 거면 애초에 만들지를 말아야 했다.


마지막 얘기는 뒤로 제쳐두고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샅샅이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우선 저택에서 숨어만 있었던 에드워드를 세상 밖으로 인도해준 방문 판매원 펙을 파헤쳐 보도록 하겠다.


펙은 다이앤 워스트가 맡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펙이란 등장인물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렇게 대범하고 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영화였기에 망정이지 일반적인 방문 판매원이었다면 그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저택에 한 발짝도 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저택 안의 어둡기 그지없는 다락방까지 올라가서는 괴상한 옷차림새를 하고 손에는 기괴한 가위를 차고있는 남성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은게 신기할 따름이다.


더군다나 의문의 가위를 찬 남성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자신이 직접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장면은 압권 그 자체이다. 애드워드를 자신이 살고있는 집에 데려와 입혀주고 재워주고 먹여주는 장면에서 나는 마더 테레사의 재림을 보았다. 이 시대 최고의 천사가 있다면 그건 펙일 것이다.


이번엔 이 시대 최고의 천사인 펙의 딸, 킴을 파헤쳐 보도록 하겠다. 킴은 위노나 라이더가 맡았다. 내가 가위손을 보고 대박이라 외쳤던 건 스토리가 그만큼 감동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노나 라이더란 여신을 만난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본 헐리우드 스타들 중 내 이상형에 가장 가까웠다. 그만큼 위노나 라이더가 킴이란 배역을 제대로 소화해 냈다고 볼 수 있다. 킴의 어머니, 팩이 이 시대 최고의 천사라면 킴은 이 시대 최고의 여신이라 불릴만 했다.


그 밖의 역할에는 케시 베이커가 남자에 목 마른 여자, 조이스 역을 맡았고 안소니 마이클 홀이 킴의 남자친구 짐 역을 맡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영화의 마지막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애드워드는 킴이 꼬부랑 할머니가 된 이후에도 매번 그랬다는 듯이 가위를 이용해서 마을로 눈을 흩날려 보낸다. 그 장면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마침내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장면을 보고 이 영화는 배드엔딩이라던 내 생각이 바뀌었다. 저택에 남겨진 애드워드는 킴이 눈을 보며 즐거워하던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킴이 즐거워하는 것은 곧 에드워드의 기쁨이다. 즉 마을로 눈을 보내는 작업은 에드워드의 기쁨인 것이다. 즉 영화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배드엔딩인지 해피엔딩인지가 갈린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킴이 어린 아이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킴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과 자식을 낳고 손주까지 봤다는 사실을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그 아이가 킴의 손주인지 아니면 단지 맡아 기르는 아이일 뿐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말이다. 어찌됐건 그 아이가 킴의 손주일 가능성은 굉장히 높다.


여기서 문제는 애드워드의 사랑하는 그녀 킴은, 애드워드가 저택에서 홀로 수십년의 세월을 보낼 동안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손주까지 봤다는 점이다. 이 사실도 모르는 우리의 순진한 에드워드는 킴을 잊지 못한채 수십년 동안 마을로 눈을 흩날려 보낸다. 물론 에드워드의 사랑은 순진한 사랑, 즉 플라토닉 러브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제 3자가 보기엔 애처롭기 그지없는 호구나 다름없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냐면 할머니가 된 킴의 대사 때문이다.


킴의 옛날 이야기를 들은 손자는 "안찾아가 봤어요?"란 질문을 건네고 킴은 '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란 뻔뻔스런 대답을 늘어놓는다. 안찾아가 봤어요란 질문에 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란 대답을 한다는 것은 그 사건 이후에 한번도 안찾아가 봤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킴은 분명히 헤어지기 직전 사랑한다라는 말을 에드워드에게 건냈다. 사랑한다 해놓고 한번도 찾아가지 않은 걸로 봤을 때, 결국 킴은 에드워드를 사랑하지 않았다로 귀결된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영화 속의 에드워드는 킴과 사랑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에드워드 역을 맡은 조니 뎁은 승리자였다. 영화를 보고 너무나 아쉬워 조니뎁과 위노나 라이더에 대해 찾아본 결과, 둘은 영화 가위손을 전후로 하여 4년 동안 연인 관계였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한편으론 나의 이상형 위노나 라이더를 조니 뎁에게 빼았겼다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71년생 위노나 라이더의 최근 사진을 찾아본 결과, 역시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는 불후의 진리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면서 이상형에서 자연스레 제외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일에 찌들어있고 감정이 메말라있는, 가슴을 후벼파는 여운을 남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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