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호웅 2017. 5. 14. 18:14
월주는 고대 백제의 땅이었다.험난한 바다를 건너와 백제인들이 진출했던 월주백제는 140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절강성 소흥시에 위치해 있다. 지금의 소흥은 5호 16국 시대까지는 월로 불렸다가 당나라 시기에 월주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이후엔 회계로 불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남송의 1대 황제 조구가 회계라는 지명을 소흥으로 바꾸면서 지금의 지명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의하면 백제가 남중국에 있던 동진과 왕래하기 시작했던 것은 근초고왕 27년이었던 372년 무렵부터 였다.백제가 소흥 지역과 교류를 활발히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지역이 유명한 청자의 요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백제가 자연스럽게 소흥 지역과 교류를 하게 되면서 하나의 경제적인 거점을 확보하게 되고 그런..
역사 호웅 2017. 5. 13. 20:07
6세기에 제작된 양직공도는 당나라에 파견됐던 사신들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에는 백제 사신의 모습도 있는데 그 설명을 보면 백제가 22개의 담로를 두고 그것을 왕족에게 나누어 주어 그곳을 지배하게 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왜국 역시 백제가 지배했던 담로 중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담로라는 말은 우리말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에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무로가 그것인데 한자 이름으로는 둔전병이라고 한다. 군대가 한 지역에 있으면서 평소에는 농사를 짓고 전시에는 군인이 되어 버리는 소위 기마민족 특유의 영토 확장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담로를 만드는 것은 백제 세력이었다. 백제 세력은 큰 담로를 두개 만들었는데 하나는 요동 반도의 서쪽에 위치했던 요서 백제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일본에 위치했던..
역사 호웅 2017. 5. 12. 00:32
마지막 네번째 근거의 키워드는 간무 천황이다.간무 천황의 어머니 고야신립이 백제인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무령왕의 10세손으로 알려진 백제인 고야신립은 하타씨 일족과는 외척관계였다고 전해진다.상식적으로 신라계인 하타씨가 백제인 고야신립과 외척관계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즉 하타씨는 신라계가 아닌 백제계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지금까지 네번의 근거를 통해 왜 하타씨가 신라계가 아닌 백제계인지를 알아보았다.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하지만 하타씨가 신라계라는 주장보다는 훨씬 더 객관적이고 설득력이 높다고 볼 수 있다.하루빨리 학계에서 하타씨에 관한 연구가 활성화되어 하타씨가 명백한 백제계라는 것을 증명해내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번외로 하타씨가 신라계라는 학설의 주장 중 설득력이 부..
역사 호웅 2017. 5. 10. 23:52
하타씨는 5세기경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도래인 씨족으로서 초기에는 주로 교토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했다가 점차 일본 각지로 세력을 확장해간 씨족이다. 하타씨는 점차 일본 각지의 토호세력으로 성장하여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이들은 일본의 가츠라가와라는 지역에 제방을 쌓았고 지금의 도게츠다리 위쪽에 저수지를 만들어 농업의 발달을 가져오게 했으며 우물을 파고 수로를 개척하여 사람들이 살기 좋은 터전을 만들었다. 하타씨가 신라계일 것이라는 설이 학계에서 지배적이다. 하지만 최근 백제계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나 역시 하타씨는 아무리봐도 백제계인데 신라계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왜냐하면 하타씨가 신라계라는 근거가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반면 하타씨가 백제계라는 근거는 4가지나 존재한..
역사 호웅 2017. 2. 19. 23:41
조선왕조실록의 세종편. 세종이 친히 고구려,백제,신라의 시조를 위한 사당을 세우고 그 뜻을 기려야 한다는 명을 내렸다. 첫 도읍지에 관해 설왕설래의 이설이 많아지자, 세종은 마침내 전국 각지에 남아있는 삼국의 도읍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라 명한다. 4년이 넘도록 방대한 양의 자료를 검토한 세종은 마침내 고구려는 평양에 신라는 경주에 그리고 백제는 위례산성이 있는 직산에 시조 사당을 짓도록 지시한다. 온조왕이 처음 나라를 세운 곳. 백제의 시초가 되고 기원이 되는 이곳을 후인들은 백제의 근원인 제원이라 이름한다. 그렇게 첫 도읍을 정한 백제는 세를 늘려 점차 북을 향해 뻗어 나간다. 백제의 뿌리가 고구려에 있기 때문에 '직산에도 동명왕 사당을 세웠다' 이렇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기록에? 분명히 나와있습니다...
역사 호웅 2017. 2. 19. 18:05
"과학적으로 조사를 해가지고(위례산성에서 출토 된 백제시대의 유물을) 이 년대가 과연 백제시대에 상응하는 오래된 것이냐, 알기 위해서 이 아시아에서는 제일 정확한 연대를 안다고 하는 일본에 교토산업대학의 야마다 교수한테 부탁을 해가지고" 탄소연대측정(196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화학자 윌라드 리비에 의해 개발된 탄소연대측정법은 방사능 물질의 반감기를 이용해 과거 유물이나 물질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식이다.)에 있어서는 아시아에서 최고로 손 꼽히는 교토산업대학, 특히 야마다 교수는 정확한 연대측정으로 이름난 학자다. 야마다 교수는 퇴임하기 전까지 일본은 물론 아시아의 대표적인 유물들의 탄소연대를 측정했다고 한다. 무너진 흙더미 사이에서 손가락만한 목탄 조각 몇개를 찾아냈다. 시료의 양이..
역사 호웅 2017. 2. 13. 19:09
조선 성종시대의 대학자 서거정은 옛 충청도의 직산현을 지나며 1500여년 전의 옛 일을 추억했다. 그리고 그 감흥을 시 한수로 풀어냈다. 백제 옛 터에 풀이 절로 우거졌네 내 여기 오니 감개하여 마음 상하네 다섯 용 천안부에 싸워 피하고 한 쌍 봉황 위례성에서 울었네 신증동국여지승람 직산현 「제원부」 직산현을 백제의 옛 터라 굳게 믿었던 서거정은 아예 자신의 시제를 백제의 근원에 있는 누각에 올라 쓴 글이라며 제원루기라 명명한다. 그는 또한 백제의 첫 도읍인 위례성을 언급한다. 그는 왜 직산을 백제의 옛 땅이라 말한 것일까? 1927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는 여러 기록으로 보아 백제의 첫 도읍이 직산임이 분명하다는 기사를 싣고있다. 서울시 송파구 위례성길 지금까지 백제의 첫 도읍지로 알려진 곳은 서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