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위대한 문화유산, 백제금동대향로 -4부-
- 역사
- 2017. 8. 15. 17:13
<백제금동대향로>
말 탄 사람
말탄 사람은 달리는 말 위에서 뒤를 향해 활을 당기는 모습과 정면을 향하여 달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말을 타고 사냥하는 모습은 그 오른쪽의 산봉우리 사이로 얼굴만 내민 동물을 향해 활을 당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얼굴만 내민 동물은 아래 송곳니가 돌출되고 머리에 양 갈래의 갈기가 표현되어 있어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상상 속의 동물(怪禽)로 생각됩니다. 다른 기마인물상은 말안장(鞍橋) 등 각종 말갖춤(馬具)을 한 말 위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착용한 사람이 앉아 달리는 모습입니다. 이 기마인물의 오른쪽 위에는 몸을 숨기고 얼굴만을 내민 멧돼지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로 보아 사냥하는 기마인물과 마찬가지로 이 기마인물 또한 사냥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기마인물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도 보입니다. 백제에서는 서산 여미리 출토 토기병에 기마인물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말 위에서 뒤를 향해 활을 당기는 모습은 무용총이나 덕흥리 벽화분 등에서 보이는데, 덕흥리 벽화고분은 말의 고개도 뒤를 향하고 있어 백제금동대향로의 기마인물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말 탄 사람이 중무장(重武裝)한 가마인물상은 말도 각종 말갖춤(馬具)을 하고 있어 당시의 기마풍습과 말갖춤 및 갑옷(甲)과 투구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마인물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이래 중국에서도 많이 보입니다.
인면조신
인면조신(人面鳥神)은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는 것으로 고문헌에서는 천 년을 산다는 장생(長生)의 동물로 등장합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인면조신은 뚜껑의 아래 부분에서 확인됩니다. 웃는 듯 화평한 얼굴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선사상으로 나타난 것이며 천왕지신총(天王地神塚), 덕흥리벽화분(德興理壁畵墳)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불교에서는 가릉빈가(迦陵頻伽: 부처의 소리를 전하는 묘음(妙音)의 새)라는 용어로 표현되고 있지만, 백제금동대향로의 인면조신이 가릉빈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국의 고대 신화 전설 등에도 이러한 반인반수형(半人半獸形)이 많이 등장하는데 인면조신형(人面鳥身形)의 예는 의외로 적지 않으며 주로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것이 많은 반면, 백제금동대향로에 나타난 인면조신형은 둘 다 머리 위에 관을 쓰지 않았으며, 높은 상투형을 이루고 있는 점으로 보아 당대관풍조(唐代觀風鳥)의 영향에 의한 조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두마리의 인면조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는 코끼리상이 있는 산봉우리 위에 위치하고 있고 또 하나는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두 노인상 앞에 조각되어 있습니다.
인면수신
인면수신(人面獸神)은 사람얼굴에 짐승 몸을 한 것으로 『산해경(山海經)』의 사비시(奢比尸)와 비슷하며, 백제금동대향로의 뚜껑 아래 부분에서 하나 확인됩니다. 웃는 듯 화평스런 얼굴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선사상으로 나타난 것이며 천왕지신총(天王地神塚), 덕흥리벽화분(德興理壁畵墳)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발견된 고고자료를 검토했을 때 인면수신형은 그 수가 의외로 적습니다. 북위(北魏)시대로부터 당대(唐代)에 이르는 분묘에서 출토된 진묘수(鎭墓獸)들를 제외하면 인면수신형(人面獸身形)의 신상(神像)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분묘에 대한 수호를 목적으로 부장(副葬: 여러 것들을 한 무덤에 묻음)된 도제(陶製: 흙을 구워서 만든 도자기 따위의 물건.)의 진묘수(鎭墓獸: 무덤 속에 놓아두는 신상)들은 인면수신형(人面獸身形)과 수수수신형(獸首獸身形)과의 한 쌍으로 발견되며 앉은 자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제금동대향로의 인면수신(人面獸身)은 네 발로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는 꼬리가 긴 것으로 미루어 사자의 신체와 닮았다고 할 수 있겠고 또 하나는 강아지와 비슷한 몸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후자의 그것은 뚜껑 구연부(그릇의 입구 또는 언저리)에 조각되었는데 코끼리상의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자는 향로 하단쯤 되는 곳에 원숭이상과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원숭이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실재(實在)하는 동물 중 하나로 백제금동대향로 하부에 두 마리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 마리는 앉아 있는 모습으로 머리 위에 벼슬 같은 것이 서 있으며,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 앉아 있습니다. 다른 한 마리는 한쪽 발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으로 양(羊)처럼 생겼으나 꼬리가 길게 드리워져 있어 원숭이로 보입니다.
외수
외수(畏獸)는 사지(四肢)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두발로 뛰는 등 발 과 손이 구분되어 있어 몸체나 그 동작이 인간과 많이 닮아 있는 짐승입니다. 외수라는 명칭은 중국 남북조시대에 유행되었으며 매우 특징 있는 형태로 그려진 한 종류의 귀신도(鬼神圖)를 가리켜 부르는 이름입니다.
외수라고 부르는 귀신도에서 공통된 특징들을 들어보면 그 사지(四肢)는 동물의 발톱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체는 인간만이 취할 수 있는 자세로 그려져 있으며 달리거나 또는 뛰는 것처럼 유난히 크게 동작하는 몸짓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는 괴이한 형태의 귀면(鬼面)으로 표현되었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그 사이에서 사나운 모양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머리와 어깨 부분에 솟아오른 깃털을 그려놓았습니다. 그 무서운 얼굴은 한국 및 일본의 고대 귀면와(鬼面瓦)에 새겨진 문양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외수에 대해서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이래로 오랜 전통을 이어온 포수(鋪首: 북쪽으로부터 들어오는 악귀를 막기 위한 것으로 호랑이[虎], 교룡[뿔이 없고 비늘이 있는 용], 거북이[龜], 뱀[蛇] 등이 둥근 고리를 물고 있는 형상)가 남북조시대에 이르러 신체를 구비한 모습으로 변신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뚜껑 상부의 2곳에서 외수가 확인됩니다. 두 마리 모두 어깨 아래 부분의 양팔에 깃털이 나 있는데 한 마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 무엇인가를 뒤쫓아가는 모습이며, 다른 한 마리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밀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수는 고구려의 벽화고분인 집안 오회분 4?5호묘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자
사자는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짐승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사자는 뚜껑 제일 아래 부분에 있으며, 그 왼쪽에 호랑이가 있습니다. 사자는 머리를 왼쪽으로 틀어 호랑이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자의 뒤쪽에는 새끼 한 마리가 머리를 어미 사자의 배에 파묻고 있는데 이는 어미사자가 새끼 사자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불교에서 사자는 문수보살(文殊菩薩)아래에 웅크리고 있거나 문수보살의 대좌(臺座)로 이용됩니다. 고구려 벽화고분인 장천1호분의 예불(禮佛) 그림에도 문수보살 아래에 사자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장천1호분의 사자는 꼬리가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고, 그 끝이 고사리잎 모양으로 말려 있어 백제금동대향로의 사자 표현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백제금동대향로의 사자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어 불교적인 요소와는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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