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호웅 2020. 5. 29. 10:01
1849년 잉국 엠블턴에서 태어난 William T. Stead는 잉국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한 언론인이었음. 오래전 사람인만큼 언론인으로서 여러가지 업적을 가지고 있는데 몇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최초로 여성기자를 고용한 사람이고,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문제였던 매춘굴과 음주굴의 실태를 알리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도록 활발히 알렸던 사람임. 62세이던 1912년에 그는 타이타닉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데, 안타깝게도 타이타닉 침몰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오른쪽 맨 밑 비뚤어진 네모 사진이 William T. Stead) 그는 1등석의 저명한 언론인인데다가 노인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구조될 수 있었지만 구명정에 다른 승객들이 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의 구명조끼를 건네주는 등 마지막까지 여러 선행을 ..
역사 호웅 2020. 5. 25. 16:01
3-4-3 -ST- 곽거병 17세의 나이에 데뷔하자마자 돌풍같은 활약으로 단숨에 빅클럽의 주전 스트라이커가 된 천재중의 천재 홀로 바이칼호까지 폭발적인 드리블을 선보이며 원더골을 뽑아내는 장면은 수많은 축구팬들의 감탄을 자아내었다. 선수생명은 짧았으나 그 임팩트는 가히 역대급이다. -LWF- 항우 (서초패왕)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특유의 역동성으로 상대방의 진영을 휘저어버리다가 순식간에 골키퍼 앞까지 다다르는 순간 득점을 뽑아내버리는 극강의 전차형 드리블러 그 파괴력은 역대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RWF- 남옥 매형의 추천으로 입단한 이래 각지의 몽골 구단과 반란 세력간의 빅매치에서 큰 전공을 세웠으며 주전으로 도약한 이후엔 막북 원정에서 큰 승리를 거두며 명을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
역사 호웅 2020. 5. 23. 13:26
제목의 주인공은 바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았던 노르드인들 게르만족의 한 분파로 주로 데인인이 중심이었던 노르드인들은 8세기 말부터 척박한 북쪽을 떠나 남쪽으로 진출하는데, 이를 본 다른 민족들은 이들을 '바이킹'이라고 불렀음 21세기인 현재도 북유럽은 큰 키에 잘생긴 외모 등 쩌는 신체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사는 지역인데 그럼 바이킹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중세시대 초기에는 얼마나 컸는지 알아보자 위의 표처럼 9~11세기 바이킹 남성의 평균키는 지역마다 소소한 차이는 있지만 아이슬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모두 기본적으로 170cm 이상의 키를 자랑함. 이 정도 신장이면 동시대 유럽은 물론이고 전근대 아시아 국가들보다도 눈에 띄게 큰 키야 심지어 10~11세기의 스웨덴 유골의 평균키는 무려 176cm..
역사 호웅 2020. 5. 21. 19:53
파월가의 독신자 짐 코벳이 상대한 호랑이 중 가장 큰 식인 호랑이. 약 200명 이상의 인간을 잡아먹고 1930년 산림관리청이 이놈의 서식지 인근을 정비 사업을 벌이자 이동해서 살육을 벌임. 하지만 독신자가 이동한 곳이 하필이면 짐 코벳의 집 근처였음 우편으로 이 소식을 접한 짐 코벳은 파월가의 독신자 호랑이 하나 잡겠다고 다른 무고한 호랑이나 동물들이 죽거나 다치는걸 막기 위해 출동. 그리고 첫 사냥을 간 해의 겨울 아침에 담배를 피우다가 언덕 덤불 아래에서 갑자기 독신자가 튀어나와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처음 보게됨. 그리고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지만 어쨌든 상대는 200명 이상을 학살했고 이 독신자 잡겠다고 다른 무고한 동물이 죽는건 더 참기 힘들었기에 죽이기로 결심. 첫 대결에서 짐 코벳은..
역사 호웅 2020. 5. 19. 15:56
수나라를 세운 문제(본명: 양견)와 독고(본명: 독고가라) 황후는 금슬이 좋았고 검소하였으며 국정 운영에도 좋은 파트너였습니다. 다만 독고 황후는 투기가 심해서 독고: 폐하, 저희가 처음 혼인할 때 약속 기억하시나요? 문제: 기억하고 말고. 당신 말고는 다른 여자에게 눈을 두지 않는거. 그래서 후궁 하나 두지 않고 있잖소. 독고: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보시옵소서. 제가 한 배에서 낳은 자식들이라 그런지 우애가 좋사옵니다. 특히 진왕 양광은 그 인품이 성현 같사옵니다. 태자를 갈아치우고 싶을 정도로. 문제: 그렇소? 험험 문제: 여봐라 울지형의 손녀를 불러 오너라 울손: 폐하, 부르셨사옵니까. 문제: 그래, 너를 보니 고구려 원정 실패에서 받은 노고가 싹 날아가구나. 이쁜 것. 울손: 소첩 이래도 되는지..
역사 호웅 2020. 5. 19. 15:47
흔히들 춘추시대 말에 철기가 보급되고 전국시대에 철기가 활성화됐다고배웠을거임. 이에 따라서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도 주 병과가 철기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거임 (양산형은 아닌거같지만 사천성 비현에서 발견된 진나라의 청동 과) 하지만 실상은 좀 달랐음. 당시 제련 기술은 매우 기초적이라 당대 제련기술로 만든 철의 장점은 흔하다는거밖에 없었음. 또 내구성도 청동기>불순물 많이섞인 철이라 청동기는 충격을 받아도 휘기만 하고 끝났는데 철은 다 부숴져버려서 다시 사용을 못했음. 즉 무기로는 초기 철보다 청동기가 더 알맞았던거임. 이러한 이유로 진나라의 주 병과는 청동기였음 당장 위의 사진만 봐도 청동무기임. ‘과’ 라는 무기 자체를 지휘관급 되는 사람이 쓰지 않고 일반 병졸들한테 쥐어줬을테니 이를 통해서도 ..
역사 호웅 2020. 5. 19. 14:26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 시점에서 이성계와 고려의 5만 군대는(전투병은 4만 이하) 이런 도전에 직면해야 합니다. 1. 주원장의 6왕 주원장 휘하에서 특별하게 공을 세워 왕으로 까지 추봉된 여섯 명입니다. 서달, 상우춘, 등유, 탕화, 목영, 이문충이 그들이고 위화도 회군 시점에서 생존한 사람은 탕화와 목영입니다. 탕화는 고향으로 가서 숙청 피한걸로 유명하지만, 1388년 시점에서는 아직 내려가기 이전이었고,목영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으니, 위협이 과중되면 그들이 수만 군대를 이끌고 올 겁니다. 물론 이들은 원나라 군벌들하고 싸운 경험이 있고 2. 풍승, 부우덕, 남옥, 경병문 6왕 이전에, 이 당시에 왕성하게 활동하던 장수들이 이런 장수들입니다. 당장 남옥은, 위화도 회군이 벌어지던 바로 그해..